[주말 편지] 백자 달항아리 / 이명환

(가톨릭신문)
“조선왕조는 공예 왕국이었고, 조선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백자이며, 백자의 제왕은 달항아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8월 15일부터 9월 25일까지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을 열었고, 이때 발간한 도록에 당시 문화재청장 유홍준 선생이 한 인사말 서두다.

달항아리만 아홉 개를 한 달 열흘 동안이나 전시했었다 하는데 어째서 모르고 있었을까. 15년 지난 2020년 5월에 도록으로나마 9개의 달항아리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특별전을 이토록 아쉬워하는 것은 달항아리에 대한 애착과 추억이 너무나 많아서이다.

조선 중기 백자대호(白瓷大壺) 달항아리! 알다시피 조선백자에는 다양한 무늬의 크고 작은 걸작 청화백자 철화백자 그리고 순백자가 있는데 그 중의 제왕이 백자대호 달항아리라고 한다. 자기(瓷器)의 제왕이라. 소박하고 둥글어 뭔지 넉넉해 보이는 대호 같은 제왕을 상상해본다. 요순시대에나 있을법한 품위 있고 어진 임금을.

요즘 들어 부쩍 뻐꾸기 소리가 자주 들린다. 백련산 자락 아파트 11층 미명헌(微明軒·서재 당호)에서 보이는 창밖은 녹음이 짙은데 거기 어디에서 들려오는 초여름 뻐꾸기 소리가 나를 묘한 감흥에 젖게 한다. 어릴 때의 시골풍경과 고향 집에서 하얀 사기그릇에 밥이나 반찬을 담아 먹던 생각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플라스틱이 나오기 전에 쓰던 크고 작은 바가지와 질그릇들. 광목을 하얗게 마전하여 옷을 지어 입던 우리의 조상들의 옷매무새와 달항아리는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세계 어디에도 보름달 닮은 순백자 항아리는 없다.

여러 형태의 빼어난 조선 자기를 큰 홀 가득 전시하는 중에 달항아리가 하나만 끼어 있어도 금세 방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져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아홉이나 한자리에 있었으니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얼마나 흐뭇하니 신비스러웠을까.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색깔이나 형태가 제각각이고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 하나의 항아리임에도 여러 개를 보는 듯 즐거웠다.

아홉 중 일곱은 국내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이고 둘은 국외, 대영 박물관과 오사카시립미술관에서 옛 고향으로 나들이 온 것이라 한다.

1980년 남편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1년 가있는 동안 나도 잠시 그곳에 머문 적이 있다. 유서 깊은 옥스퍼드 박물관에는 나라별로 구획이 정해져 있었는데 한국관은 일본관의 사분의 일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다. 그쪽에는 전통 다다미 거실에 가구와 우끼요(浮世)도 걸려있고 아기자기한 정원이랑 의상 등 별별 것이 다 있었는데, 한국관에는 수수한 토기와 고려, 조선 자기가 몇 점 있는 중에 아, 잘생긴 달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고려청자와 자그마한 조선 청화 모란 문 항아리 곁에 마치 옛날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의 달항아리! 크기로 보나 여기저기 얼룩이 진 고(古)한 우윳빛 색깔로 보나 일급 달항아리였다. 이렇게 저렇게 꾸며놓은 넓은 옆집 일본관 곁, 조촐한 방 한 칸에 단출한 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달항아리는 만리타국에서도 편안히 주위와 잘 어울리고 있는 듯, 그때 나는 문득 자애롭고 푸근한 성모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달항아리 앞에 서서 잠시 성모송을 바쳤다.

제왕의 위엄이 아니라 지극한 겸손으로 우리를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 같은 달항아리 아홉이, 각자 뽐내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있었을 독특한 분위기를 상상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명환(사도 요한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