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신앙살이] (541) 바람도 불고, 숨도 쉬고…

(가톨릭신문)


교구 신부님들 몇 분과 점심 때 회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 자리에서 군대에서 보직이 원예사병이었던 동창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그 신부님을 살-살 꼬드겨서 내가 있는 성당으로 끌고 가듯(?) 데려갔습니다. 그런 다음 신부님과 성지를 돌아보면서, 내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주변 정리도 할 겸 꽃과 나무들의 상태를 좀 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더니 잡풀과 꽃, 그리고 죽은 나무와 넝쿨 가지들이 서로 엉켜 있는 것 등을 지적하면서, 그런 것들만 잘 정리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부님, 조만간에 시간 좀 내 주세요. 신부님과 같이 일을 하면 많이 배울 것 같아요!”

그러자 그 신부님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야, 이 웬쑤. 일 부려 먹으려고 나를 이리로 끌고 왔구나!”

신부님은 눈치(?)가 생각 외로 빨랐습니다. 그 신부님은 다음에 하루 날을 잡아 꼭 오겠다는 확답을 한 후 돌아갔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신부님에게 ‘언제 올 것이냐’며 문자로 달달 볶았더니, 신부님은 일주일 만에 작업복 차림으로 성당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종일토록 함께 일을 했습니다. 나는 간식을 제공하면서, 꽃과 나무에 관해 이러저러 여러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어딘가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석진아, 지난번에 내가 말 안 한 것이 있는데. 음…. 너는 나무를 잘 키워 보려고 정성을 들이는데, 아무래도 나무를 죽이는 것 같아.”

대상은 ‘야외 십자가의 길’ 쪽에 담장 경계로 심어 놓은 측백나무였습니다. 그 곳에는 측백나무 가지들과 주변의 낙엽들, 수많은 개똥들이 뒤엉킨 채 쌓여 있었습니다. 사실, 측백나무 주변에 그런 것들을 놔 둔 이유도 있었습니다. 낙엽들이 비와 함께 잘 썩으면 나무의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내리는 산성비는 낙엽들을 썩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무의 숨통까지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나무의 영양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낙엽들은 계속해서 썩지 않는 상태에서 방치되었기에 그 주변은 해충이나 바이러스의 온상이 됐습니다. 평소 일주일에 두 번 나무에 물을 주었지만, 그 물은 낙엽과 개똥, 주변의 오염 물질로 인해 썩은 물이 되었고, 나무의 성장 뿐 아니라 나무의 영양에 해를 끼치는 환경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동창 신부님과 나는 그날, 늦은 저녁때까지 나무 밑에 있는 이물질을 다 긁어서 치웠습니다. 그렇게 치운 후 의자에 앉아서 땀을 식히는데, 놀랍게도 측백나무의 땅 지면과 줄기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것을 눈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들도 우리에게 나뭇가지를 흔들며 ‘고맙고, 정말 감사하다’ 인사를 하는 듯 했습니다. 정말,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통하면서 나무들이 편안하게 숨 쉬며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아 놓기만 하고 가지고 있기만 하고 움켜쥐기만 하면 좋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버릴 것은 버리고 치울 것은 치우고 비울 것은 비울 때…. 그 위로 바람이 불고 나무도 숨 쉰다는 사실을! 우리 삶도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그릇된 사고, 사욕의 이물질이 잔뜩 쌓이면 그게 우리의 내면을 헤치는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고, 짜증의 원인이 되고, 스트레스의 발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무언가를 내려놓기만 하면, 언제든 비움의 바람이 불어와 사람과의 관계를 숨 쉬게 하고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케 할 것만 같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