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미나마타 유엔협약(최예용, 프란치스코, 환경보건학자)

(가톨릭평화신문)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경청하려 해도 모두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잇몸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발과 손을 뒤틀고 꼬아서 온몸을 쥐어짜내야 겨우 한마디가 입에서 나오는데 일본어 통역자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고, 그녀와 수십 년 같이 지내온 일본 활동가가 옆에서 알아듣고 일본어 통역자에게 전하고 그가 한국말로 전한 이야기는 이랬다. “미나마타병은 낫지 않아요.”

2019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에서의 일이다. 온몸이 뒤틀린 그녀가 탄 휠체어를 여러 명이 연단에 들어 올린 순간 행사장은 고요해졌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 시노부 사카모토 선생의 피해 증언은 보고 듣는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63년 전 사카모토의 엄마가 그녀를 임신했을 때 바닷가 마을 일본 미나마타에서는 생선이 주식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 증세를 보인 아기는 사카모토만이 아니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화학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버린 폐수에 섞인 수은이 바다를 오염시켰고, 먹이 사슬을 타고 수은에 오염된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온몸을 배배꼬며 침을 흘리다 죽어간 세계적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 이야기다.

1956년 미나마타병 첫 피해 사례가 보고된 후 61년이 지난 2017년, 유엔은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 국제 협약’을 발효했다. 20만 명이 넘는 피해자 중 3000여 명만 인정하고, 7만여 명은 최소한의 구제금만 지급되었다. 그나마도 60여 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일본 환경 운동가들은 일본 정부의 미나마타병 대책을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지적한다.

우리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꼴인 1000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했고, 그중 10%가량인 9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강피해를 경험했으며 사망자는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숫자만으로는 미나마타보다 수십 배 많은 규모다.

2015년 유엔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해 피해자들과 옥시레킷벤키저 그리고 한국 정부 환경부 등을 직접 만났다. 2016년 9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권고안을 채택했다. “정부나 관련 기업들이 재발 방지를 위한 충분한 조처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의 옥시와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는 모든 피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중요한 장소에 영구적인 기념물을 세우며,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입증하라.”

유엔의 권고는 얼마나 이행되고 있을까? 어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기업과 정부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지난 8월 31일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9주기 날이지만 정부도 기업도 국회도 이날을 기억하지 않았고 잊힌 날이 되었다. 언제쯤 유엔이 권고한 대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중요한 장소에 영구적인 기념물이 세워질까.

필자는 3년 전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할 때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앞으로 이 참사가 제대로 규명되면 그 교훈이 국제 사회에 알려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가서 이런 연설을 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국민들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참혹한 화학 참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입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생활 화학제품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국제환경협약을 제안합니다. 일명 가습기 살균제 유엔협약이라고 부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