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딸의 유언, 완고했던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어

(가톨릭평화신문)



“보나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아버지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고 기도를 정말 많이 했죠.”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주최한 가정 선교 활성화를 위한 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강선옥(리타)씨는 “남편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실망해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며 “딸은 그런 아빠가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달라며 1984년 영세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고 말했다.

강씨의 딸 남지민(보나)씨는 뇌성마비로 평생을 누워 지내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10년 전부터는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기도했다. 강씨는 “딸이 묵주를 돌릴 수 없어 벽에 붙인 묵주 그림을 보며 묵주기도 20단을 바쳤다”며 “교황님과 사제, 수도자, 기도가 필요한 이웃, 그리고 가족을 위한 지향이었다”고 했다. 입대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이웃의 부탁에 군생활 내내 기도를 해주던 딸이었다.

아버지의 입교를 위해 기도를 바치던 2019년, 보나씨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강씨는 “작년 5월에 보나가 아프기 시작하자 아버지를 부르면서 ‘이번에 제가 하늘나라에 가면 꼭 세례를 받아달라. 이번엔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말했다”며 “24년 전에도 보나가 몸이 매우 아플 때 남편이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었다”고 설명했다.

몇 번의 생사 고비를 넘겼던 보나씨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4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뒤로하고 결국 42살 나이로 주님 품에 안겼다. 강씨는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던 보나가 퇴원을 희망하며 자신이 누워 지낸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에 갈 거라고 했다”며 “퇴원 하루 뒤,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인 9월 11일 세상을 떠났다”고 고개를 숙였다.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누군가에게 부탁해 꽃과 편지를 건네는 딸이었어요. 작년에는 보나가 꽃이 되어 영원히 하늘나라로 갔네요.”

보나를 눈물로 보낸 아버지 남정우씨는 결국 딸의 소원을 들어줬다. 그가 딸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남씨는 딸이 세상을 떠난 뒤 100일간 미사에 참여하고 교리교육를 받았다. 완고한 성격의 남씨가 성당에 나간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씨는 코로나19로 세례식이 늦어져 올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베드로’로 새롭게 태어났다. 보나씨를 만나러 집에 왔던 대구대교구 총대리 장신호 주교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미리 정해준 세례명이었다. 남씨는 지금 레지오 예비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강씨는 “신앙 얘기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만 주는 경우를 자주 본다. 먼저 가정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럼 성당에 가자고 할 때 누가 거부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강씨는 “보나가 떠난 빈자리를 보면 아직도 너무나 그립다”고 했다. “보나가 평소 ‘엄마는 내 기저귀 씻다 욕실에서 죽겠어요. 제가 하늘나라 가면 엄마가 삶아준 천 기저귀 묶어서 내려보낼 테니까 그거 타고 하늘나라 올라오세요’라고 했어요. 보나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남편과 열심히 신앙생활 이어가야죠.”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