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던 첫 마음으로…(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

(가톨릭평화신문)



11월은 세상을 먼저 떠나신 분들을 기억하며 위로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반추의 계절인 듯합니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이 통째로 바뀌고 아쉬움 속 잘못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책과 회심의 마음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의 때이며, 특히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교회에 주어진 은총의 희년이 시작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제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평협에서도 희년을 맞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한 희년의 삶을 살자는 취지의 ‘제자리 찾기 운동(하느님 백성답게, 모두 제자리로)’을 펼치기로 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선물로 주어진 은총의 희년에 주님으로부터 새로 받은 새하얀 백지 위에 한 해를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느덧 저도 인생 지하철 6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시기를 맞게 되어 예년과 다른 느낌이 듭니다.

희년으로 맞이할 새해는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기 삶의 실체를 시험할 수 있는 기간이며, 노아의 방주가 정화되는 데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신앙적, 도덕적으로 아쉬웠던 지난 세월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제거하는 회복과 희망이 담겨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본당 설립 40주년을 준비하며 기도 운동과 함께 성전 대보수를 통해 낡은 시설을 교체하고 새로운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40의 의미를 어떻게 담아낼까 생각해 보면, 저희 부부가 결혼하자마자 함께 손잡고 성당을 찾았던 신혼 때의 초심, 함께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를 통해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가수 노사연의 ‘바램’ 노랫말처럼 보다 성숙한 신앙인, 남에게 보여주는 신앙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로 다짐하며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도록 저의 약한 믿음을 주님께 청하며 의탁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물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말이 있습니다. 요즘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건강히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여겨져 주어진 봉사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좀 더 자유로운 순례의 시간들로 채우고 싶은 소박한 희망도 가져 봅니다. 긴 시간 저를 보살펴 주고 알뜰살뜰 채워 준 저의 반쪽 배우자와 함께 사랑의 주님을 사이에 두고 오순도순, 알콩달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