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난민이 간다 난민이 온다(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가톨릭평화신문)



얼마 전 한 미얀마 난민의 부고를 접했다. 국내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는 동지들과 2004년 난민인정신청을 했고 2008년 불허 결정과 이의신청 기각결정을 받았다. ‘순수’ 난민이 아니라 이주민 인권활동을 하는 ‘운동권’이라 난민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정보기관의 황당한 주장이 영향을 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2009년 그 취소소송을 맡게 됐다. 1심 판결 결과는 패소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들의 수년간에 걸친 꾸준한 미얀마 민주화 활동을 “소극적인 방법”, “활동수준도 미미” 등으로 폄하했다. 이 법원은 더 나아가 “시위자들의 얼굴을 고의로 노출시키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지적하며 “경제적 활동이 곤란해질 것이라는 염려에서 이 사건 난민신청을 한 것으로 추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이들의 난민지위뿐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진정성도 부정하는 잔인한 내용이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냈다. “당신이라면, 단지 한국 사회의 난민이 되기 위해 6년 동안의 기나긴 쇼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항소심에서 관련 단체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온갖 자료들을 추가로 모았다. 한번은 증거자료를 포함한 키 높이의 준비서면을 제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승소 판결이 있었고, 2011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었다. 그 후로는 이주민 인권활동을 하며 그를 몇 번 본 것이 전부다. 나는 내가 맡은 소송에서 난민인정을 받은 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난민임을 자꾸 상기시키거나 감사의 뜻을 표명해야 하는 대상은 눈에 안 띄는 것이 좋지 않을까해서다.

미얀마의 상황이 변했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지역사회 발전 등을 고민하며 여러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너무도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뚫고 난민으로 인정받았던 한 사람, 정말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권력을 잡으면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사무실로 찾아온 아프가니스탄 유학생을 상담했다. 불안정한 체류문제를 걱정하며 당장 먹고살기 위해 공장을 다니고 있었다. 난민들을 돕고자 하는 초등학교 교사를 자문하고, 이런저런 캠페인에 동참하고, 관련 단체 활동가, 변호사들과 함께 관련 국내외 회의에 참석했다.

난민들이 오고 있다. 정부가 난민 논쟁을 회피하기 위해 ‘특별기여자’로 지칭하며 데리고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있는데 이들의 체류조건과 처우는 아직도 미정이다. 기존에 체류하던 이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기존 비자를 연장하거나 단기 체류 비자를 발급하고, 체류자격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출국 유예만을 한다는데 이들이 어떻게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소위 ‘특별기여자’ 중 아직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여성 난민 등 전체적으로 난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인접국 이란에는 매일 7000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도착하고 있지만 인신매매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나 보건의료 면에서 아무런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한 이란 활동가의 호소가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서 난민의 삶은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난민 문제는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마냥 회피하고 있을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정부, 민간 차원의 계획과 자원이 한데 모이고, 작지만 의미 있는 고민과 노력이 모두 모여 단 한 명이라도 많은 난민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