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편지] 성호의 힘 / 오정순

(가톨릭신문)
창세기 성서공부 팀과 만난 지 40년이 되어간다. 나이와 성향과 삶의 스타일로 보아서는 만나기 어려운 인연인데도 고향 사람들처럼 꾸준히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이 식당 개업을 하여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역 앞에서 만나 택시를 기다렸다.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몇 명이 모여 있으니 빈 택시가 그냥 지나간다. 나는 얼떨결에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는 택시가 우리에게 오도록 안배해 주십사고 화살기도를 했다.

이때 지나간 택시가 돌아서 우리 앞에 섰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택시를 타고 고맙다고 말하며 어찌하여 다시 돌아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백미러로 성호 긋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아무리 신자라도 즉각 행동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어찌하여 그리 고운 마음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요즈음 하느님 사랑에 심취하여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영적활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실감하고 싶다고 했다. 신림동까지 가는 동안 소소한 신앙 상담과 신앙 체험을 들려주면 알고 싶은 내용을 자꾸 물었다. 그는 우리가 그냥 만난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만남을 허락하신 것 같다고 기뻐하였다.

어느새 우리가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는 차를 인근에 세워두고 친구네 식당으로 찾아왔다. 이 집에서 밥을 사 먹고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고 하였다. 아마도 영적 목마름에 해갈이 오는 것 같았다.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나의 신간을 한 권 그에게 주면서 책을 다 읽고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메모하여 두었다가 나중에 차근차근 물어도 좋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그는 출판사를 통해 전화번호를 물어 연락했다. 혼자 듣기 아까우니 본인이 다니는 성당에서 몇 회에 걸쳐 가르침을 해주면 좋겠다는 제의다.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오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어서 다 같이 듣고 싶다고 했다. 듣고 싶고 알고 싶은 영적 세계에 대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신의 현존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은 성경 읽기와 미사로 이어지며 삶을 구체적인 변화로 이끈다. 개별적 체험에서 보편화 되어가는 과정을 몇 회에 걸쳐 들어보지도 않은 성당에 가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가 하느님을 자랑하는 것인데,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는 무한정 자랑해도 다 좋아하니 그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다. 밤이 깊어도 집에 돌아올 시간만 남겨두고 함께 머물곤 했다.

그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믿음의 뿌리가 탄탄해지는 것을 알기에 개별적으로 물으면 무엇이든 대화해주었다. 그리고 또 세월은 갔다. 축일이 되면 그 택시기사 분에게서 문자가 온다. 덕분에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안부를 전한다.

길거리에서 화살기도를 하면서 나쁜 기도가 아니라 도움을 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진 나는 이렇게 파장이 커질 줄 미처 몰랐다. 해가 없는 곳이 없듯이 하루를 시작 성호로 열면 모든 시간이 섭리의 시간이 된다. 전기다리미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둔 것 같으니 신비는 끝이 없다. 그리고 나의 모든 시간은 기도 시간이다. 청원의 결과가 더디면 돕는 중이라고 해석한다. 그러하니 기도는 다 이루어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날씨가 맑으면 먼 산이 앞당겨 보이고 성호를 긋고 기도로 영혼을 맑히면 사는 일이 복잡하지 않다. 성호 안에서 다 이루어진다. 침묵이 말이 되기도 하고 포기가 선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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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순(알비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