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당 주보성인] 오상의 비오

(가톨릭신문)

제1대리구 동탄부활본당의 주보성인인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카푸친 작은형제회·1887~1968)은 많은 이들이 ‘오상(五傷)의 비오’라 부르며 기억하는 성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손과 발, 옆구리에 난 다섯 상처를 50년 동안이나 지니고 살아온 성인의 살아있는 기적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 “나는 그저 기도하는 가난한 형제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성인의 생애는 기적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성인은 1887년 5월 25일 이탈리아 베네벤토대교구에 속한 피에트렐치나라는 작은 마을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16세에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입회했고, 비오라는 수도명을 받아 1910년 23세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이 사제가 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성인의 몸에 오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인의 오상은 처음에는 작은 상처였지만 점차 커졌고, 후에는 아물지도, 덧나지도 않은 상태로 끝없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성인이 흘린 피는 매일 찻잔 한 잔을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나 아픈 지를 묻는 어떤 이의 질문에 성인은 “굵고 네모난 못을 손에다 대고 망치로 힘껏 때려 박은 다음에 그 못을 뺑 돌려보란 말이요. 꼭 그만큼 아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성인은 끊임없이 이 오상의 기적을 거둬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오상에서 오는 극도의 고통을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모습을 없애달라는 요청이었다. 성인은 이 오상의 기적을 숨기고자 했지만 1919년 경에는 성인의 오상에 대한 소식이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성인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지만, 기적으로 오해와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성인은 이런 오해들로 1931년 성무집행 중지 명령을 받았을 때조차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며 순명했다고 한다. 성인은 오해가 풀리기까지 3년 동안 격리된 상태로 미사와 기도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인은 생애의 대부분을 산 조반니 로톤도에서 보내면서 기도와 미사, 고해성사에 온전히 헌신했다. 성인은 “우리는 책 속에서 하느님을 찾지만,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며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고 설명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인은 미사에 참례한 이들이 영적으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을 뿐 아니라, 고해성사 때는 그 사람의 영혼을 꿰뚫어보고 때로는 거칠게 대하면서까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성인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1956년 ‘고통을 더는 집’이라는 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성인은 1968년 9월 22일 오전 5시에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다음날인 23일 월요일 새벽 2시 30분에 세상을 떠났다. 1971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카푸친 작은형제회 장상과 이야기하면서 성인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비오 신부님이 얻은 명성을 보십시오. 그분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왜 그렇겠습니까? 그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현명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가 겸손하게 미사를 지내서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해소에 머물며 고해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쉽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오상을 자신의 몸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와 고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