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로 만난 하느님] (19)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예수 그리스도’

(가톨릭신문)

‘피에타‘(Piet?)는 경건한 마음, 경건한 동정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보통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에 올려 놓고 안고 있는 도상을 가리킨다. 피에타 도상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모습과 성모자 모습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많은 화가들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안고 가슴 아파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피에타 도상은 13세기 독일에서 만들어진 ‘베스퍼빌트’(Vesperbild)가 시초로, 이탈리아로 전해지면서 ‘피에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베스퍼빌트는 저녁기도의 조각상이라는 뜻이다.

피에타는 14세기와 15세기에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널리 퍼진다. 당시 수많은 시신 앞에서 가슴 아파하며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죽은 예수를 깊은 사랑으로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죽음과 질병에 맞서는 위로와 희망의 표상이 됐다. 피에타는 많은 이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준 것이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을 안은 모습처럼 자신이 죽고 나면 어머니 같이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의 두 팔에 안길 것이란 희망의 표상이 된 것이다.



■ 팔에 안긴 죽은 예수 그리스도

15세기 후반, 베네치아의 저명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경~1516)는 많은 성모자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며, 전통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피에타를 제작한다. 특히 북부 르네상스의 치밀하고 상세한 유화 기법과 15세기 초 이탈리아 회화의 기념비적인 전통을 통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작품에서 베네치아 회화만의 색채와 톤으로 유연한 윤곽선과 충만한 빛의 효과와 자연 풍경 그리고 자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은 종교적 감성과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작품에서 예수는 두 눈을 감고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게 기대어 서 있다. 요한 사도도 옆에서 예수를 부축하고 있다.

피에타 도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크게 예수 시신의 자세에 따라 수평형과 수직형으로 나눈다. 수평형은 성모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수평으로 안은 자세를, 수직형은 성모가 예수 시신을 수직으로 안은 자세를 하고 있다. 벨리니의 피에타는 수직형에 가깝지만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특별한 구성으로 표현했다.

예수의 왼손 바로 석관(石棺) 모서리에는 벨리니의 서명과 함께 “커지는 눈이 탄식을 불러일으킬 때, 조반니 벨리니의 이 작품은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라틴어 비문이 쓰여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 작품 속 등장인물인 성모 마리아와 요한, 예수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를 무덤에 묻으며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석관 앞에서 애도하고 있다. 이들 뒤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있고 앞쪽으로는 석관 뚜껑이 보인다. 죽은 예수의 못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 손은 가장 밝게 관 뚜껑의 가장자리 위에 놓여 있다.

화면 앞 관의 가장자리는 조형적으로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상징적 요소도 내포돼 있다. 석관 위에 놓인 예수의 왼손을 경계로 예수가 서 있는 신성한 공간과 우리가 서 있는 세속적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두 경계 지점에 예수가 서 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의 문, 성스러운 공간인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나라의 풍경을 암시하는 듯 화가는 마리아와 요한의 뒤로 밭과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 그리고 성을 묘사하고 있다.


■ 팔에 지탱한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아들 예수의 볼에 얼굴을 기울이며 아들의 어깨에 목을 살며시 기대고 있다. 마리아의 망토 끝자락은 예수의 가시관에 닿아 있고 살짝 열린 마리아의 입은 예수의 입과 똑같은 모양이다. 눈시울이 부풀어 오르고 충혈된 눈에 눈물이 어렸지만 마리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온화한 표정이다. 마리아는 고요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통의 표현을 자제하며 아들 예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요한 사도의 얼굴은 예수의 얼굴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그의 시선도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요한의 눈시울 역시 달아올랐고 목 근육은 긴장돼 보인다.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내면으로 억제한다면 요한은 가혹하고 부당한 죽음을 세상에 외치고 있는 듯하다. 요한의 얼굴은 성모 마리아와 거리가 느껴지지만 그의 왼손은 예수의 배 왼쪽에 올라 있고 오른손은 마리아의 손을 붙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예수의 접힌 팔도 성모 마리아의 팔이 감싸 안고 있다. 두 사람은 무덤 위에 놓인 예수의 얼굴과 손 그리고 몸을 만지며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들이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는 예수의 모습은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예고하고 있다.


■ 팔에 안겨 잠자는 아기 예수

피에타 도상처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무릎에 안은 모습은 성모자의 모습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조반니 벨리니의 매부인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성모자’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 예수는 생명이 끓긴 죽은 아기처럼 잠을 자고 있다. 잠은 죽음의 은유다. 잠자는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잠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한다.

또 아기 예수의 몸을 겹겹이 동여맨 수의를 연상케 하는 흰 천도 예수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에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 얼굴은 행복한 미소가 아니라 슬픔으로 가득하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진 아기 예수에게 슬픈 표정으로 볼을 맞대고 있지만 앞선 작품과 같이 아기 예수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할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