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 김준기 안드레아·원윤철 요한 세례자·박아기 막달레나

(가톨릭평화신문)


▨김준기(안드레아, ?~1866)

김준기는 진천 출신으로 입교한 뒤 진천 새울(현 충북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교우촌으로 이주해 신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1866년 10월 진천 포교들이 새울 교우촌에 들이닥쳐 김준기를 비롯한 신자 4명을 체포해 관아로 압송했다. 진천 관장은 이들에게 신앙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도록 권유하고 문초했지만, 순교를 각오한 이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진천 관장은 김준기를 비롯한 동료 신자들을 청주 진영으로 이송했다.

청주 진의 문초와 형벌은 진천 관아에서보다 혹독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다. 또 함께 형벌을 받던 교우들이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함께 순교하자”고 권면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옥중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뒤를 따르라고 가르쳤고, 동생에게도 “너는 내가 죽은 뒤에도 어린 조카를 잘 가르치고 열심히 수계해서 내 뒤를 따라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해라”고 당부했다. 김준기는 1866년 11월 23일 동료 교우들과 함께 순교했다.



▨ 원윤철(요한 세례자, 1786~1866)

원윤철은 1862년 무렵에 서울 남대문 밖 자암(현 서울 중구 봉래동ㆍ순화동ㆍ의주로)에 사는 정의배(마르코) 회장에게 교리를 배워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고 입교했다.

원윤철은 이후 형제와 자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고, 교우들과 자주 왕래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입교한 뒤 주교의 명에 따라 첩을 내보내고 아들과 함께 살면서 열심히 신앙을 실천했다. 그는 또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선교사와 신자들이 순교하자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신자들이 돈을 모아 배를 구입할 때 한몫을 했다. 아울러 순교한 베르뇌 주교의 시신을 거둬 옮기는 일에도 참여했다.

원윤철은 1866년 10월 집안에서 심부름하는 비신자의 고발로 체포됐다. 이내 포도청으로 끌려간 그는 혹독한 매질과 주뢰형을 받고 잠시 마음이 약해졌으나 끝내 신앙을 굳게 증언했다. 그는 1866년 11월 24일 한강 양화진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80세였다.

▨ 박아기(막달레나, 1809~1866)

박아기는 서울 남문 밖 전생서(현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태어났으며 10살 이전에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신앙생활을 했다. 1868년 서울에서 순교한 2명의 박바오로가 그녀의 오빠들이고, 우포도청에서 순교한 박순지(요한 사도)는 그녀의 조카이다. 또 1866년 양화진에서 순교한 박성운(바오로)은 그녀의 손자뻘이고, 남편 안순명(베드로) 역시 그녀와 함께 순교했다.

박아기는 20세가량 됐을 때 공덕리(현 서울 마포 공덕동)에 사는 안순명과 혼인했다. 결혼 초 남편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아내를 구박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남편에게 순명하면서 그를 권면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남편도 점차 회심해 입교했다.

성품이 어질고 자애로운 박아기는 자신의 좋은 옷과 음식을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죽을 위험에 처한 비신자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일에 열심했다. 또 남의 몸에 난 종기를 보면 고름을 빨아 주곤 해 ‘빨주부 마누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교우들에게 “겁내지 마라”며 용기를 주고, 체포된 주교와 신부, 신자들의 순교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던 중 그해 11월 17일 남편과 함께 그도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다.

포도청에 압송된 그는 포교들이 “교우들을 밀고하라”고 다그치자 “천주교에서는 남을 밀고하지 못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니 죽을지언정 남의 이름을 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굳게 신앙을 증언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후 남편 안순명이 “부부가 함께 승천하면 좋겠다”고 하자 박아기는 “부부가 함께 체포됐으니 함께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했다. 박아기는 1866년 11월 24일 또는 25일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