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살펴보는 ‘주거권’에 대한 교회 가르침

(가톨릭신문)

가난하면 안정된 주거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지난해 서울 돈의동 쪽방 화재(1명 사망), 종로5가 서울장여관 화재(6명 사망), 국일고시원 화재(7명 사망), 지난 8월 전주 여인숙 화재(3명 사망) 등 주거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연이어 참변을 당했다. 가난한 사람은 불이 나면 희생되고 폭염에는 그대로 노출된다. 추위에 고통 받고 제대로 쉬지도 못해 건강을 잃어간다. 가난하면 안전하게 살 권리조차 없는 것일까.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17일)을 맞아 주거권에 대한 사회와 교회의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이를 위해 투신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활동을 알아본다.


■ 주거권, 모두의 권리

“한국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난해 5월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이하 특보)이 공식 방한해, 한국 주거권의 실태를 조사하고 한 말이다.

‘적절한 주거의 권리’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적절한 삶의 질에 대한 권리’의 하나로서 선언됐다. 1966년에는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ESCR, 약칭 사회권규약)에서 국가의 핵심 의무 중 하나로 적절한 주거권 보장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35조 3항에서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난한 이들은 적절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고시원, 쪽방, 여인숙 등 비적정 주거 거주자가 37만 가구, 반지하 거주자는 36만 가구에 이른다”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5%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적정 주거 거주자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하지만 이마저도 재개발 등으로 철거돼 무주거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파르하 특보는 국제인권 기준에서 한국의 홈리스, 장애인 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우려하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인권 대원칙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주거권을 온전히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 교회 가르침

인권적 관점에서 주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와 함께 교회는 인간 존엄성에 기초해 모든 이의 주거권을 계속해서 얘기해 왔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고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11항)고 명시했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공권력이 주거 빈곤층을 단순한 생산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 여겨야 하며, 가족들을 그들 곁에 불러 합당한 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현지 민족이나 지역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66항)

1987년 발표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교회와 주택문제」에서는 “집 없는 이들을 위한 교회의 투신은 인간적이고 복음적인 투신이며, 그 투신은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의 한 표현이다”며 직접적으로 교회 입장에서 주택 문제를 거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1983년 발표된 교황청 가정평의회 「가정 권리 헌장」을 인용하며 “가정은 가정 공동체 생활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물리적 환경 안에서, 가족 수에 맞추어 품위 있게 사는 데에 적합한 주택을 공급받을 권리를 지닌다”면서 “가정과 주택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44항)고 밝혔다.

이상의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집은 단순한 잠자리나 상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는 “눈에 보이는 가난한 이들인 주거취약 계층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그들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이웃이 돼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 함께하는 교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불안한 주거 환경에 놓인 이들을 위해 교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지난 10월 1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이하 빈민사목위)는 서울시(시장 박원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과 함께 ‘아동주거빈곤가구 입주가구 지원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을 통해 아동빈곤가구에 대한 주거 및 주거안정 지원, 지역사회 정착 지원과 아동주거빈곤가구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보증금 및 이사비 등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앞서 5월 23일 빈민사목위는 정책 토론회를 통해 아동주거빈곤에 대한 실태를 다루며 아동주거권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가장 피해를 크게 입는 대상은 아동이다. 정책 토론회 내용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과 같은 비적정 주거 공간에 거주하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아동은 전국 80여만 명에 달한다.

빈민사목위 홍은하(젬마) 사무국장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아동들에게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 안에서 심리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오늘날 새로운 빈곤층으로 청년이 대두되고 있다. ‘N포 세대’(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청년들의 미래는 캄캄하다고들 말한다. 일을 하고 있어도 집을 살 수 없고, 결혼과 양육 또한 선택사항이 됐다. 빈민사목위는 청년 주거 빈곤에 주목하며, 지난해 주거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사회주택 ‘니둠’(NIDUM, 라틴어로 둥지라는 뜻)을 열었다. (재)바보의나눔의 지원과 시민단체의 협력으로 진행됐다. 현재 여성 4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는 일반 시세의 3분의 1정도 내고 있다.

지난 10월 7일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이하 개정연대)가 출범했다. 나승구 신부가 개정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국장 황경원 신부)도 연대하고 있다. 지난해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월세 세입자 가구의 평균 계속거주기간은 3.4년이다.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개정된 이후 30년째 그대로다. 주거 안정에 힘써 온 참여연대 박효주 간사는 “세입자들은 2년마다 보증금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불안한 주거 환경에 놓여 있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주거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거 취약계층들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나 신부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사업이 아니라 일상의 이웃을 챙기고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라며 “이런 활동들은 교회만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함께 협업해서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