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로 만난 하느님] (23) 어린 나귀를 탄 예수 그리스도

(가톨릭신문)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팔라티나성당(Cappella Palatina)은 노르만 궁전 부속 성당으로 노르만 왕 루제로 2세에 의해 1130년대 초 지어지기 시작했다. 성당은 아랍-노르만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아랍 양식의 나무 천장과 눈부신 모자이크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 안쪽 벽면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화는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약 부분에서는 예수의 생애를 연작으로 제작했다.

커다란 화면의 중심부에 예수가 나귀를 타고 있다. 예수의 생애 가운데 나귀는 예수의 탄생과 이집트로의 피신 이후 ‘예루살렘 입성’에서 다시 등장한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나귀를 데려오도록 했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나귀를 타고 갔다. 예수는 즈카르야의 예언대로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으로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왕국인 천상 예루살렘이라는 곳으로 스스로 수난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 입성하는 승리자

이 모자이크 작품에서 중심 주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나귀에 앉은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예수의 머리는 십자가가 새겨진 후광에 둘러싸여 있다. 예수께서만 오직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탈출기에 드러난 하느님의 이름, ‘나는 곧 나다’를 표시한다. 예수는 속에 자줏빛 통옷을 입고 청색의 겉옷을 두르고 있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라는 말씀처럼 자줏빛은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상징하며 신성을 의미한다. 청색은 조용하고 차분한 의미가 있으며 육화된 인성을 상징한다. 즉, 예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가 신성을 인성으로 감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뒤로는 사도들이 따라오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 앞에는 군중이 모여 있다. 예수께서는 왼손으로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자신을 만나러 도시에서 나오는 군중에게 강복하고 있다. 예수의 평온한 얼굴에는 수난 중에 겪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이 배어 있다. 예수 오른쪽에 있는 베드로는 예수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치 말을 걸듯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고 있다.


■ 환호하는 어린이들

나귀는 어린이들이 깔아놓은 가지를 먹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질 수 없는 어린 나귀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어린 나귀가 아직 길들지 않았고 그래서 똑바로 걸을 줄 모르는 것처럼, 우상 숭배하는 이방 백성들 또한 하느님의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알레고리적(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으로 해석했다.

왼쪽 뒤에 있는 산은 높고 모든 것보다 높이 솟아 있다. 이것은 올리브 산이자 메시아의 의미를 띠는 시온 산으로 하느님이 사는 산으로 표현된다. 오른쪽에는 높고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이 보인다. 성 안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있다. 성문 앞에는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 종려나무 가지를 든 유다인들이 예수의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유다인들은 높은 사람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흔드는 관습이 있다. 종려나무 가지는 초기 그리스도교 무덤이나 카타콤(지하묘지)에서도 발견됐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승리에 대한 믿음과 영광, 순교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으로 나온 사람들은 매우 침울해 보인다. 이들은 아직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는 백성이며 빛을 향해 나오는 이방인으로 아직 예수께로 오지 못한 사람을 나타낸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정치권력을 가진 혁명적 지도자를 희망했고 그런 왕,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의 엄청난 적들을 벌하고, 영광스러운 유다 왕국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화면 앞 네 명의 어린이는 그리스도의 입성을 매우 환영하는 모습이다. 성 앞에서 관습에 따라 예수를 맞이하는 유다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오른쪽 두 아이는 옷을 벗어 길에 깔아 놓고 예수께서 그 위로 지나도록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한 아이는 나뭇가지를 든 손을 높이 들고 예수를 기쁘게 맞이하고 있다. 왼쪽 한 아이는 옷을 벗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모자이크에 나타난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은 기쁨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아이들은 관습에 따라 굳은 표정으로 겉으로만 예수를 맞이하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달리 순수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이하고 있다.


■ 영광스러운 성인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순교 성인을 주제로 다룬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시칠리아 화가 마티아 데 마리가 그린 ‘성 모데스타와 성녀 크레센티아와 함께 있는 성 비토’의 작품에서처럼 세 명의 성인은 각각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마티아 데 마리는 가르멜 봉쇄수도회의 의뢰로 이탈리아 오스투니(Ostuni)의 모나첼레 교회에 성 비토 제단화를 제작했다. 가운데 성 비토는 그의 유모인 성녀 크레센시아(Crescentia)와 그녀의 남편인 성 모데스토(Modesto)와 함께 서 있다. 이들은 순교의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화가는 성 비토를 젊은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해 그가 어린 나이에 하느님을 위해 순교했음을 나타냈다. 성 비토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며 그의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는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세 성인에게 영광의 화관과 금관을 각각 내리려 한다. 성인 옆에 있는 두 마리의 개는 사람이 개에게 물렸을 때 성 비토가 독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설에 기인한 것이다. 독이 있는 짐승에게 물렸을 때 성 비토에게 특별히 기도하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