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흩어져 있던 김 추기경 유물 250점 꼼꼼히 정리

(가톨릭평화신문)

▲ 첫 제의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서울대교구 200년 역사를 정리하며 첫 번째 자료집으로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기념 「역대 교구장 유물 자료집 김수환 추기경」(이하 「김 추기경 자료집」, 사진)을 발간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김 추기경 유물 250점을 기념 상본, 성직자복, 칙서, 인장, 문서, 친필 등 14개 항목으로 나눠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세례대장과 견진대장, 유서, 여권, 강론 원고 등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도 많다. 서울대교구 문서고, 대구대교구 사료실, 마산교구 사무처 등을 비롯해 10개 기관에서 김 추기경 유물 자료를 제공했다. 감수는 서울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 김종수(잠실7동본당 주임) 신부가, 자료 번역은 패트릭 맥 뮬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가 맡았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재단이사장 정순택(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는 자료집 발간 축사에서 “역대 교구장님들께서 남기신 유물은 서울대교구와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의 역사를 품고 있다”면서 “역대 교구장님 유물 안에서 우리 교구의 역사와 신앙 정신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 자료집」 논고 ‘김수환 추기경 유품-사료적 가치와 그 의의’를 쓴 이원복(치릴로)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추기경님 유품에는 그분의 따사로운 체온과 애정이 깃들어 있고, 유품 한 점 한 점 살펴볼수록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분이 차지했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온다”며 자료집을 통해 김 추기경과 새롭게 만나기를 기대했다.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11주기를 맞아 「김 추기경 자료집」에 실린 유물 일부를 소개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세례대장(1922, 대구대교구 사료실 소장)




김 추기경은 1922년 7월 25일 대구성당(현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대구대목구 부주교 베르모렐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대장(No.23750)에는 “남산동에서 7월 2일(음 5. 8) 김요셉과 서마르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세례명은 스테파노, 대부는 이베드로”라고 기록되어 있다.<붉은 점선 안>
 
 

▨견진대장(1922, 대교대교구 사료실 소장)



김 추기경은 1922년 7월 25일 유아 세례를 받은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9월 8일 안 드망즈 주교에게 견진성사를 받았다. 견진성사를 받은 곳은 대구 남산정본당이라고 적혀 있는데 현 계산동 주교좌성당이다. 대부는 류바오로이고, 당시 사는 곳은 달성군 수성명 대명동으로 나와 있다. 그 시절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라 태어나자마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이어서 견진성사까지 받게 했다.
 
 

▨사제수품 기념 상본(1951,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성찬례와 어린양의 목자인 예수 성심 성화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사제 서품일(1951년 9월 15일)과 첫 미사 일정, 수품 성구가 적혀 있다. 사제 서품식은 대구대성당(현 대구 계산동주교좌성당)에서, 첫 미사는 성요셉성당(현 대구 남산성당)에서 했다. 첫 사목지는 안동본당(현 안동 주교좌목성동본당)이었다.

 
 

▨첫 제의(1951,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 소장)

첫 제의는 꽃무늬가 있는 백색 직물 바탕에 꽃과 밀 이삭이 수 놓여 있다.

 
 

▨팔리움과 팔리움 수여 사진(1969,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팔리움,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사진)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띠로 양털로 만들었다. 교황청과 일치를 보여주는 외적 표지다. 팔리움에는 여섯 개의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는데 네 가지 덕행(정의, 용기, 절제, 예지)과 마르타의 활동적인 삶, 마리아의 관상적인 삶을 상징한다.

사진은 김 추기경이 추기경에 서임된 뒤 1969년 4월 29일 바티칸 성 마틸다 경당에서 바오로 6세 교황에게 팔리움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성작과 성반(1967,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바오로 6세 교황이 1968년 김 추기경(당시 대주교)에게 선물한 성작과 성반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10월 6일 바티칸에서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에 참석하고 다음날 바오로 6세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이때 교황은 김 추기경에게 자신의 성작과 성반을 선물했다. 성작 받침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와 바오로 초상, 바오로 6세 교황의 문장이 장식돼 있다. 성반에는 비둘기와 백합, 초승달,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새로 선임된 추기경 명단이 실린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회보(1969,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 소장)



김 추기경 이름은 20번에 실려 있다.<사진 붉은 점 부근> 명의 본당 이름인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가 나란히 적혀 있다. 김 추기경은 당시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이었다. 독일 유학시절 김 추기경 스승이었던 회프너 추기경(23번) 이름이 눈에 띈다.

김 추기경은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회프너 추기경과 함께 서임된 일화를 이렇게 남겼다. “난 우르바노대학에서 위빈 추기경, 로살레스 추기경, 그리고 독일 유학시절 은사인 회프너 추기경과 함께 임명장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회프너 추기경님이 임명 순서상 내 뒤였다. 그래서 ‘교수님, 제자가 먼저 받아서 죄송합니다’라고 석고대죄(?) 하면서 임명장을 받은 기억이 난다.”


 

▨유서(1970~1971,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 소장)



장기간 부재 혹은 죽음을 대비해 작성한 친필 유서다. 1970년 1월 16일, 10월 19일, 1971년 2월 21에 작성됐다. 교구장직 대행 요청, 바티칸에 신변 처리 문제 요청의 내용이 담겨 있다. 1971년에 쓴 유서에는 김 추기경의 겸손과 사랑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행렬용 추기경 카파 (1966,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카파는 특별한 예식 때 주교나 추기경이 입는 소매가 없는 외투 형태의 긴 옷이다. 김 추기경은 1969년 5월 20일 추기경 서임 경축 미사에서 이 카파를 입고 입장했다. 추기경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카파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조한건 신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교구 역사를 기념하고 정리하는 일은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입니다.”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교구사와 자료집 간행을 총괄하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는 역사 정리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신부는 “교구 역사를 기념하는 사업은 하느님 구원 역사가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라며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재에 대한 평가와 정립 없이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교구 설정 200주년 기념사업 첫 결실인 「김 추기경 자료집」 간행에 관해서는 “여러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기꺼이 자료를 내어 준 기관과 단체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김 추기경 자료집」을 위해 전국에 있는 김 추기경 유물 소장처를 직접 방문해 유물을 새롭게 실측하고 일일이 촬영한 후 목록을 정리했다.

조 신부는 “김 추기경에게서 여러 사람과 주고받으신 편지와 카드를 확인하면서 다시금 추기경님의 따뜻한 마음과 깊은 영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제들에게 쓰신 편지를 보면 김 추기경님이 얼마나 자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제생활, 신앙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죠.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글에서도 김 추기경님의 사목 영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놓으면 훗날 김 추기경님 관련 연구나 다른 역사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겠지요.”

조 신부는 “유물의 사본만 남아 있고 원본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채워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김 추기경 자료집」을 시작으로 10년에 걸쳐 교구 200주년사 서술에 필요한 자료집을 계속 간행할 계획이다. 역대 교구장 유물 자료집도 결국 교구 200주년사 간행을 위한 기초 자료인 셈이다.

조 신부는 “교구사 정리를 위해 관련 심포지엄도 두 차례 열 계획”이라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작업인만큼 의미있는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