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선종] 삶과 신앙

(가톨릭신문)

6·25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7월, 28세의 젊은 사제였던 나길모 주교는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로 낯선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만 4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국에서 지내고, 40년간 인천교구장을 맡으면서 그는 한국을 ‘우리나라’, 인천교구를 ‘우리 교구’라고 부르며 고국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오랜 삶을 살았다.

나 주교가 한국에 머물렀던 1954~2002년은 교회 안팎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격변의 시기였다.

고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은 1961년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주교수품 뒤 한국 주교단 일원으로 1962~1965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일이다.

생전에 그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거대한 변화의 모태가 된 현장에 있었던 감격을 피력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결정에 의해 한국어 미사가 봉헌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기쁨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나 주교는 노동·인권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68년 발생한 강화도 심도직물사건에 대해 직접 입장을 표명한 것은 교회가 약자 편에 서서 사회 참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됐다.

심도직물 측은 직원들이 당시 인천교구 강화본당 주임 전미카엘 신부가 주도한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 활동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자 이들을 불법해고하고 나 주교에게 전 신부를 전임시킬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나 주교는 담화문을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공단이 많은 지역 특성상 노동자에 대한 고인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인천교구는 2002년 한국교회 최초로 부활 제5주일을 ‘노동자 주일’로 제정했다.

나 주교는 1970년대 후반, 세계적인 인권운동단체인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당시 명칭 한국위원회) 이사장을 역임해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사회참여파 주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을 맡아 1996년 인천가톨릭대학교 개교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나 주교는 2002년 은퇴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마지막 외국인 현직 주교이기도 했다.

외부적으로는 불의에 맞서는 투사의 이미지였지만 스스로를 ‘인천 깍쟁이’라 불렀던 나 주교는 교회 내에서는 검소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고, 가장 좋아한 음식은 인천 주교좌답동성당 앞 신포시장에서 파는 만두였다.

인천교구민들이 기억하는 나 주교의 모습은 ‘먼저 다가와 반가운 인사를 건네던 분’, ‘지하철 맨 앞 칸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던 분’, ‘늘 웃으며 약자를 위해 주시던 분’ 등 청빈과 겸손을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목자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목표어인 ‘UT OMNES UNUM SINT’(모든 이가 하나 되기를)의 실천을 위해 평생 애썼던 나 주교의 문장에는 국화인 무궁화, 한국교회 주보인 성모 마리아, 한국교회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 그리고 ‘제2의 고향’인 인천 항구의 모습이 담겨 있다.



■ 고(故) 나길모(羅吉模) 굴리엘모 주교 약력
(Most Rev. William J. McNaughton, M.M.)

소속: 메리놀외방전교회
1926.12.07. 출생

사제수품: 1953.06.13. / 주교수품: 1961.08.24.

1954.07.22. 내한
1954.08.13.~1955.09.01. 청주교구 장호원본당 보좌신부
1955.09.02.~1955.09.27. 청주교구 북문로본당 보좌신부
1955.09.28.~1957.08.14. 청주교구 북문로본당 주임신부
1957.08.15.~1960.07.15. 청주교구 내덕동본당 주임신부
1961.06.06. 투부르보 미누스 명의주교와 인천대목구장 임명
1962.03.10. 인천교구장 전보(인천교구 승격)
1962.10.~1965.12. 제2차 바티칸공의회 참석
1962.11.14.~2002.04.25. 재단법인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이사장
1964.02.05.~2002.04.25. 학교법인 인천가톨릭교육재단 이사장
1965.02.~1981.05. 주교회의 총무
1965.02.~1970.10.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장
1973.10.~1978.04. 주교회의 일치위원회 위원장
1978.04.~1984.11.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
1994.09.12.~2002.04.25.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1996.12.30.~2002.04.25. 재단법인 인천가톨릭청소년회 이사장
2002.04.25. 인천교구장 사임, 은퇴. 이후 미국 보스턴 대교구에서 교포(한국인들) 신자들을 위한 사목 활동
2020.02.04. 선종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