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가 묻고 답하는 ‘선과 악’ - 「도덕성의 원리」에 비춰본 선과 악의 문제

(가톨릭신문)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 것인가. 신앙에 관한 근본적 질문 중 하나다. 인간 삶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악을 없애실 수 있지 않을까. 왜 악은 계속 존재하는 것일까? 전능하시고 온전히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악을 만드셨을까?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4/5~1274, 도미니코 수도회, 이하 토마스 성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선만 만드셨다”고. 이어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한국성토마스연구소 소장 이재룡 신부가 번역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18권: 도덕성의 원리」 내용을 바탕으로 이에 관해 짚어본다. 이 책은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대교구와 한국성토마스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해 더욱 관심을 모은다.

‘하느님이 누구신지’,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선한 것은 무엇인지’. 역사를 거듭하며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던져온 질문이다. 토마스 성인은 「신학대전」에서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해답 또한 제시한다. 특히 「신학대전 제18권: 도덕성의 원리」(324쪽/2만6000원/바오로딸)는 인간 행동의 선악 문제를 다룬 「신학대전」 제2부 제1편(제18문~제21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우리말-라틴어 대역본이다. 토마스 성인은 이 부분에서 ‘인간적 행위의 선과 악이 무엇인지’ 물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또한 무엇이 인간 활동을 선하게 혹은 악하게 만드는 지에 관해 대답한다. 결론적으로, 행위의 선악을 규정하는 것은 대상과 목적, 그 주변 상황이다.

제18문은 ‘인간적 행위에서의 선성과 악성에 대하여’, 제19문은 ‘의지의 내적 행위의 선성과 악성에 대하여’, 제20문은 ‘인간의 외적 행위의 선성과 악성에 대하여’, 제21문은 ‘인간적 행위의 귀결들과 그 선성 또는 악성에 대하여’ 묻고 답하는 내용이다.
토마스 성인은 가장 먼저 “모든 인간적 활동이 다 선한가, 아니면 어떤 것들은 악한가? (제18문 제1절)”라는 질문을 던진다.

성인이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기본 논의구조, 곧 반론-재반론-답변-해답을 제시하는 방식을 따라가 보자.

토마스 성인은 우선 이 질문에 관해 ‘인간의 모든 활동이 다 선하고, (결국) 악한 활동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라는 반론을 제시한다. 디오니시우스 교부의 말을 인용, “악은 오로지 선 덕분에만 행할 수 있는데, 선 덕분에 악이 생겨나지 않는다”고도 덧붙인다. 즉 어떤 활동도 악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재반론. 그러나 반대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서 3장 20절에서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어떤 활동은 악하다. 토마스 성인은 이어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선한 어떤 존재에서 선의 일부가 결핍된 것이라고 ‘답변’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각장애인은 살아있다는 선성을 지니고 있다. 시각이 결핍됐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악이다. 그는 걸을 수는 있지만 시각을 결하고 있어 걷는데 큰 제약(결함)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 성인은 ‘악은 어떤 결함 있는 것의 선 덕분에 행동한다’며 ‘만일 선이라고는 조금도 없다면, 어떠한 존재자도 아닐 것이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해답’을 내놓는다. 즉 선을 채우면 악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이들이 예를 들어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사람도 선하냐고 묻곤 한다. 토마스 성인의 설명을 적용하자면 히틀러도 전체적으로 선하지만, 그의 선성 일부가 제거된 모습이다. 히틀러에게서 선의 일부, 예를 들어 자기 통제력이나 이웃사랑 등이 제거됐을 때 그는 자신의 선한 지능과 힘 등을 악한 목적에 사용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울러 토마스 성인은 도덕적 악이란 인간의 목적 곧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지 않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다. 때문에 그 본성은 선하고 그에 따라 전개되는 행위도 선하다. 그런데 의지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규범은 바로 이성이다. 의지가 올바른 통찰과 일치한다면 그 행위는 선하지만, 올바른 질서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죄가 된다. 또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움직이기에, 자신의 행위로 인해 하느님 앞에서 공로나 과실을 가질 수 있다.

토마스 성인은 또한 어떤 외적 행위가 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인들, 다시 말해 목적과 행위 자체의 본성과 상황 모두가 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모자란다면 그것은 그 행위를 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적 행위의 올바름은 그 행위가 ‘이성’과 ‘영원법’의 질서와 합치되는 데에서 나오고, 그것에서 벗어날 때 죄가 된다. 이 행위들은 행위 주체인 인격을 완성하거나 혹은 빗나가게 만들며, 그것들이 쌓여 그 사람의 됨됨이를 구성하기에 행위자는 그 하나하나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신과 인간, 세계’ 궁극적 탐구… 그리스도교 사상 집대성
방대한 분량과 독특한 전개 방식
현대에도 무한한 가치 지닌 역작

「신학대전」은 한두 마디 수식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그리스도교 사상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성인은 신과 인간을 궁극적으로 탐구한 결과를 ‘신학계의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이 책에 담았다.

「신학대전」은 성인이 짧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신을, 제2부에서는 인간을, 제3부에서는 그리스도를 다룬다. 각 내용은 권위 있는 가르침들을 찬-반으로 제시한 후 토마스 성인 자신의 해결책을 밝히는 형식으로 전개한다. 반론과 재반론이 오가는 토론, 자신의 답변을 반론들에 일일이 적용해 본인 설명의 타당성을 강조한 내용을 지면에서 펼치는 방식도 독특하다. 분량도 그야말로 방대하다. 글자 수로 치면 신·구약 성경 글자 수를 모두 풀어놓은 것보다 3배 정도 많다.

한국성토마스연구소 소장 이재룡 신부는 “「신학대전」은 하느님과 세계와 인간을 깊이 통찰하여, 그 속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교적 진리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신학의 백과사전적 집대성’일 뿐만 아니라 근대 유럽 사상과 문명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류문화사적 걸작’”이라고 강조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신앙과 이성」(1998년)을 통해 토마스 성인을 ‘진리의 사도’(Apostolus veritatis)로 정의했다. 인류의 ‘공통학자’(Doctor Communis)라고 불리는 토마스 성인은 순수함과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대부분의 내용을 정립했다.

실제 그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대, 이 사회에서도 무한대의 가치를 보인다. 레오 13세 교황은 토마스 성인의 사상을 가톨릭교회 공식 학설로 공표하며 가톨릭의 모든 학교와 대학에서 이에 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도록 독려하기 위해,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원제목 「가톨릭 학교들에서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정신에 따라 교육되어야 하는 그리스도교 철학에 관하여」, 1879년)를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오늘날 방종으로 변형되고 있는 자유의 진정한 본성, 법칙과 그 힘, 자명한 원리들의 영역, 더 높은 권위에 대한 마땅한 복종, 인간 상호 간의 사랑 등에 대한 토마스의 가르침들은 사회질서의 평온과 대중의 안녕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새로운 법의 원리들을 전복시킬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하고 꺾일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32항)고 밝혔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