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특별한 십자가의 길] (하) 요당리성지

(가톨릭신문)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길 155 소재 요당리 성지(전담 강버들 신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성지 표지가 나타난 후 다소 좁은 길을 달리다 보면 그제야 붉은색 대성당 건물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문에 들어서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기면 기도의 광장,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 성인 묘지 등이 대형 십자가와 더불어 조화롭고 아늑하게 조성된 성지를 마주할 수 있다.

3월 29일 사순 제5주일의 성지는 조용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공식적으로 성지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다. 그래도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기를 기도로 이겨내고, 사순시기를 성지에서 보내고자 하는 신자들 모습이 가끔 눈에 띄었다. 이들은 십자가의 길에서 혹은 묵주기도의 길에서 기도를 바쳤다.

요당리 성지는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지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오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교우촌으로 추측된다. 이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렸다. 공소는 갓등이공소와 은이공소와 관계를 맺으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또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충청도와 경기도, 서울을 잇는 선교 거점 몫을 맡았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성지는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 박해에서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이 됐다. 장주기(요셉, 1803~1866) 성인과 복자 장 토마스(1815~1866)의 출생지였으며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1819~1869)와 순교자 림 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롤로) 등이 이곳 출신이다. 그리고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장주기 성인의 친인척이자 지역 출신 순교자로 추정된다.

성 범 라우렌시오 주교(1796~1839)가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왔었고, 손경서(안드레아, 1799~1839) 순교자는 범 주교 피신을 돕다가 순교했다.

아울러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전답을 운영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 성인이 그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 성인은 여기서 공소 회장을 지내다 순교했다.

이처럼 요당리 성지는 하느님을 증거하며 숨져간 순교자들의 피땀 어린 신앙이 배어있는 곳이며 초기 한국교회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서려 있는 장소다.

십자가의 길은 주차장을 지나 오른편으로 나 있는 길에 있다. 묵주기도의 길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되는 이 기도의 길은 흡사 야외 조각 전시장 같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만큼 십사처의 각 처가 각별하다. 이숙자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작품으로 ‘손’에 주목하면서 각 처의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에서는 밧줄에 묶인 손이 등장하고 계속해서 십자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손, 넘어져 땅바닥을 짚으시는 예수님 손이 등장한다.

성모님과 만나시는 장면에서는 감싸주시는 성모님의 손이 표현됐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도와주려고 내미는 손, 땀을 닦아주려고 수건을 내미는 베로니카의 손, 눈물을 닦고 있는 여인들의 손, 예수님 옷을 찢어 나누는 병사들의 손 등이 보인다.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에서는 못 박힌 예수님의 두 발이 등장하며,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은 무덤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십자가의 길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를 통해 각 처의 전체를 바라보고 묵상하도록 이끈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핵심을 더 집중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작가는 언어 다음으로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손짓’이라는 점에 초점을 뒀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하느님 손길과 함께 인간의 손을 통해 이루시는 많은 일들에 대한 묵상이 작품의 실마리가 됐다.

손짓 하나에 생사가 갈릴 수 있고, 손이 묶임으로써 죽음 같은 무력감을 느낄 수 있는 등 말이나 언어로 주고받는 것보다 손으로 주고받는 것이 더 실천적이고 복음적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십자가의 길 각 처는 성경 구절의 핵심 속에서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와 구원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낸다.

요당리 성지 십자가의 길은 순교자들 자취가 숨 쉬는 성지의 특성을 품어 안으면서, 그런 십자가의 예수님 고통을 순교자들이 뒤따르고자 했음을 환기하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문의 031-353-9725 요당리 성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