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제가 보내온 ‘코로나 단상’

(가톨릭신문)
전 세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온 인류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생활은 멈춰서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 국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으며, 보건 당국과 의료진은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두 명의 사제가 코로나19와 싸우는 신자들을 응원하는 글을 보내왔다.


■ 신종 코로나에 맞서 싸우면서 강한 면역체계 형성하는 한국인들 / 문종원 신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가는 한국인들의 여정을 소개한 영상 한 편이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마스크를 못 사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손수 바느질해 만든 마스크를 기부한 할머니, 자발적으로 기부 행렬에 동참하는 국민들, 현장의 부족한 의료 인력을 메우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의사·간호사 등등이 소개된다. “어느 날 몹쓸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된 시절에도, 어려울 때면 공동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던 이 이상한 나라 사람들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전한다.

한국인은 어디서 이러한 놀라운 특성이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수많은 위기를 견디어내고, 반복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생겨났다. 과거 시련의 역사를 통해 정신적인 그리고 영적인 강한 면역체계가 서서히 생겨난 것이다. 이 면역체계는 충실성과 유연성이 합해짐으로써 생긴다. 한국인은 위기 때마다 함께 극복할 친구를 새롭게 끌어내고, 당면한 문제를 재구성하고, 견디어낼 결심을 하면서 생존해 왔다. 역경, 외상, 비극, 위협들에 맞서 잘 대처해 왔으며, 슬픈 상처에서 회복되고 고통스러운 좌절에서 다시 원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여러 번 놀라는 일이지만, 치유하고 성장하고 더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맞서면서 가족 안에서, 그리고 시민 공동체와 믿음 공동체는 이 면역체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부정적인 경험들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한국인이 고통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이러한 능력이 없었다면, 똑같은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며 퇴보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인은 인간애와 공동선이라는 목표에 몰두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이상들이 위협을 받으면 기꺼이 저항하고 되받아 싸우며 방어한다. 직면하는 문제들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며, 일련의 스트레스가 많은 사건들을 견딜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이로움을 얻고 역경을 유익한 것으로 바꾼다.

지금 한국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방해가 되는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는, 부정적인 환경 한복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행한 상황을 유익한 것으로 바꾸는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을 인내력과 담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신종 바이러스를 이겨낼 것이다. 상처에서 점진적으로 치료되고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극복하며 초기의 안녕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이 여전히 앞에 놓여 있어도 계속 나아가며 헌신할 것이다. 고뇌와 고통의 경험을 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기회로 바꿀 것이다. 외상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변화와 공동체의 성장을 이룰 것이다.

함께 한 고통, 존중받은 고통은 참을 수 있는 고통이 된다. 나눔과 존중받는 환경에서, 고통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고 완화시킬 수 있다.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께서는 고통이 삶의 줄거리 가운데 일부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유한한 인간에게, 그리고 덧없는 것들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틀림없이 절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고통을 견디어 내며 생명을 바쳐서라도 어떤 궁극적인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고통은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헌신하는 삶에서 늘 따라 오는 것이다. 성경은 삶과 죽음, 잃음과 얻음, 고통과 구원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고통을 완화시키고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심리적인 그리고 영적인 면역체계를 강화할 수 있다.


■ 주님, 지금 어디에 계시는 거죠? / 여영환 신부

주님, 이제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100년에 한 번 일어날 법한 세계적 전염병이 왜 돌고 있는지?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걸리고 5천 만 명이 숨을 거두었다고 하죠. 그해 조선총독부의 기록에는 조선인 1650만 명 중 740만 명이 걸리고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니까요. 그 때 이후 이번이 가장 큰 역병이라 하니까요. 도대체 당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요? 하루하루 더 많은 국가와 인류에게 들불처럼 번져가 교황청도 문이 닫힌 지금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요? 뭐라고 말씀 좀 해주셔요...

그러던 어느 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떠올려 주셨지요. 평소 부자는 날마다 좋은 옷을 바꿔 입으며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데 시간을 보냈지요. 대문 앞의 개들도 종기를 핥아주고 있는 불쌍한 라자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부자는 죽어서 지옥으로 간 후 애원을 하였지만 이미 늦었죠. 노아의 방주 때도 그랬지요.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먹고 마셨죠. 결국 때가 되어 큰물이 밀려와 다 쓸려 내려갔습니다.

갑작스런 재앙이 닥쳤을 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 하기 마련이죠. 많은 나라에서 그랬듯이 더 많은 사재기를 하죠. 게다가 욕심이 더한 사람은 이참에 큰 몫을 챙기려 너무도 소중한 마스크 같은 물건들을 대량으로 사서 감춰두었죠.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실내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여전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이런 재난의 때에 자신을 내어 놓는 분들도 있지요. 한 두 사람이 아니죠. 코로나 환자 현장 속에 들어가는 사람부터 자기 마스크 한 장도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는 사람들까지... 평소 자신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지요. 아마 종말이 올 때도 그렇겠지요.

주님, 라자로처럼 종기투성이로 죽어가는 불쌍한 이웃은 전혀 모른 체,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즐겁고 호화스런 삶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졌기에 이런 대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닌지요. 한 두 사람만이 아니라, 한 두 국가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인류의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이런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닌지요. 만일 그렇다면 결국 이 세계적 재앙은 인류가 스스로 만든 것이네요. 지금의 재앙을 조금이라도 빨리 멈추게 하는 길은 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이웃들과 조금이라도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길이겠네요. 각자의 처지해서 지금 저희가 이웃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이 무엇이 있는지 그걸 실천하는 길이겠네요.

우리의 작은 나눔이 하나하나 퍼지고 또 퍼져나갈 때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도 꼬리를 감추게 되겠네요. 힘든 줄 알지만 그걸 견디며 우리가 고통에 함께 할 때 행복 바이러스들이 자꾸 자꾸 퍼져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게 되겠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깊은 지식을 쌓고 좋은 묵상을 하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그 사람의 아픔에 함께 하려는 작은 몸짓 하나…. 당신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그걸 바라시는 거죠. 그곳이 어디든 그 사람이 누구든 당신께서는 늘 가장 아픈 곳에 저희 보다 먼저 가 계시니까요...

주님, 그게 당신 마음이신 거죠. 그게 당신 뜻인 거죠. 측은지심… 불쌍한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당신 마음인거 맞죠. 사실 지금 수 없이 많은 천사 같은 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당신의 마음이 그들 마음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코로나가 들불처럼 번지는 지금 이 시간, 당신께서는 죽어가는 우리 각자의 영혼들을 일깨워 고통과 아픔에 함께 하도록 눈물로 일깨우고 계시는 거죠. 그래서 지금 당신께서는 우리 보다 더 힘들고 더 바쁘신 거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곳 한티피정의집 생활치료센터에 와 계신 모든 분들도 당신께서 인도해주고 계신 거죠. 주님, 은총의 사순절, 죽어가는 저희 영혼을 또 다시 건져주고 계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