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의 사회적 과제는?

(가톨릭신문)

그릇된 ‘성적 욕망의 노예들’이 ‘성 노예’를 만들었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 이야기다.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은 메신저 텔레그램의 n번방과 박사방에서 일어난 성 착취 사건을 말한다. 닉네임 ‘갓갓’이라는 이용자가 처음 텔레그램에 1번부터 8번까지 총 8개의 대화방(일명 n번방)을 만들고 여기에 성 착취 영상을 올려, 참여자들이 이를 구매·공유하면서 n번방이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텔레그램에는 n번방과 유사한 방들이 생겼는데 이 중 지난해 7월 등장한 것이 ‘박사방’이다. 닉네임 ‘단 하나의 별 박사’, 일명 ‘박사’ 조주빈(25)씨가 운영한 이 방에는 성인 여성은 물론 아동·청소년까지 등장하는 성 착취 영상이 판매·공유됐고, 조씨는 이들을 ‘노예’라고 부르며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 등을 모집한다고 유인한 뒤, 신상 정보와 나체 사진(속옷 광고를 찍을 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등을 받아 이를 빌미로 협박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사방은 영상을 일부 볼 수 있는 ‘맛보기’ 방과 가상화폐 등 추적이 어려운 금품을 내고 들어갈 수 있는 3단계 유료 방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에 최소 수만 명에서 최대 26만 명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n번방·박사방 개설자와 운영진, 참여자 모두의 신상 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왔고, 그 중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은 3월 27일 기준 각각 265만·194만 명이 넘는 인원의 추천을 받아 역대 청와대 국민청원 중 가장 많이 추천받은 청원 1·2 위에 올랐다.

박사방 운영자 조씨는 3월 16일 체포, 25일 검찰에 송치돼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지금과 같은 공분 속에서도 디지털 성 착취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사회는 n번방·박사방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이 사건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은 무엇일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목국장 박정우(후고) 신부에게 이를 들어본다.




텔레그램을 통한 집단 성 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 혹은 ‘박사방 사건’ 운영자가 체포되면서 운영자는 물론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고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연일 이번 사건에 대한 근본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번 사건의 문제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아 ‘불법촬영’을 하고 온라인에 유통하는 범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여러 번 있어왔지만, 제대로 된 법과 제도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국회, 경찰, 법원 등 실질적인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이들이 여성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모욕감과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결국 이런 ‘불법촬영’ 산업은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음란물을 원하는 수요자들의 요구와 맞물려 점점 그 정도가 심해져 이번 사건처럼 십대의 어린 소녀들마저 협박하여 성적 노예로 삼고 가학적인 성 착취 영상의 피해자로 만드는 ‘악마적인’ 범죄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에서 이런 성 착취물을 유료로 유통하는 대화방들이 여러 개 있고, ‘박사방’의 경우처럼 수위가 가장 높은 단계의 방은 입장료가 무려 15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충격적인 것은 텔레그램에 60여 개의 비슷한 유형의 채팅방에서 유료회원 외에도 무료 영상을 받아본 인원들까지 단순히 취합하면 26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박사방 유료회원 거래내역이 약 2000건이며, 배포 및 소지자가 총 6만 명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 중 하나는 단순히 여성의 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을 넘어서서 적어도 수만 명의 (평범한?) ‘남성들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용인했다’는 사실이다. 문명사회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범죄에 분노하고 이런 불법 대화방을 당연히 고발해야 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이런 추악한 성범죄의 공범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에서 ‘포르노’를 즐기며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을 성적 유희의 도구로 삼으며 성장하게 만든 한국의 왜곡된 성문화가 근본 원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 범죄를 저지른 운영자뿐만 아니라 가입자 전원을 처벌한다고 문제가 금방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고 쾌락의 도구로 삼는 왜곡된 성문화와 내면화된 가부장적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없다면 이런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는 인간 존엄과 양성평등에 대한 가치관 교육, 올바른 성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 교회와 사회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남녀가 동등하게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존재이며, 남녀가 함께 서로 돕고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자기실현을 이루도록 섭리하셨다고 가르친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남녀의 ‘성’은 인격의 표현이며 생명과 사랑이 드러나는 장이라는 것과 절제와 정결한 사랑이 무분별한 쾌락보다 더 충만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가정과 학교, 교회와 사회 공동체가 이끌어주어야 한다.

둘째는 역시 법과 제도의 개선이다. 그동안 ‘버닝썬 게이트’ 등 비슷한 유형의 불법촬영과 유포의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특히 중죄로 처벌하고 이 같은 범죄의 예방과 감시의 법제화,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강화 등 가능한 모든 제도적 수단들을 동원해서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의 재발을 막고 피해자의 고통을 줄여 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공분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성적 가치관에 있어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기를 기도한다.




박정우 신부 (서울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미국 뉴욕 포담대학교에서 사회학(종교사회학)을 공부, 2004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과 함께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위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