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광장에서 바친 교황의 기도, 13억 그리스도인과 인류를 하나로

(가톨릭평화신문)




3월 27일 오후 6시(현지 시각). 비 내리는 성 베드로 광장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제단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교황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우르비 엣 오르비) 전례를 주례했다. 교황은 “우리는 혼자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오로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교황의 모습을 지켜본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교황과 함께했다.

교황은 이날 주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도중 풍랑을 가라앉히신 내용을 담은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말씀에 관해 강론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과 코로나19로 혼돈에 빠진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키며 현재 위기를 타개할 통찰을 안겨줬다. 더불어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는 절절한 기도를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해줬다.

가톨릭평화방송은 1일 교황의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 사회로 수원가톨릭대 총장 곽진상 신부, 가톨릭대 교수 최준규 신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김혜윤 수녀가 패널로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 사회자와 패널들이 교황의 특별 기도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정래·최준규·곽진상 신부, 김혜윤 수녀. 백영민 기자





조정래 신부(이하 사회) :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 내리는 텅 빈 광장을 올라가는 모습부터 인상 깊었다.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 전례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김혜윤 수녀(이하 김 수녀) : 광장이 비어 있기에 교황이 혼자라는 사실이 더 두드러졌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13억 명의 가톨릭 신자가 모두 참여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찬 광장이었고, 거룩한 시간이었다는 외신 기사를 봤다. 같은 생각이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곽진상 신부(이하 곽 신부) :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이 세상 아픔과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 전체의 고통과 함께하는 아버지와도 같았다. 그 모습에서 외로움도 느껴졌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외로움을 교황이 진실로 느끼며 걸어가는 듯 보였다.

최준규 신부(이하 최 신부) : 비가 내려 상황이 더욱 애잔했다. 비는 주님의 은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주님의 은총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의 불편한 발걸음을 보면서 진정한 사목자가 걸어야 하는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회 :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제안한 자리다.

최 신부 : 복음을 보면 주님께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늘 기도하셨다. 특별히 오랫동안 기도하시고 밤새워 기도하셨다. 그런 모습이 우리가 닮아야 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교황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전 세계 신자를 향해 함께 기도하자고 청했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위기와 절망에서 신앙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다. 교황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줬다.

곽 신부 : 교황은 보편 교회 수장이면서 전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다. 전 인류가 아파하는 고통을 하느님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솔하게 묻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위로를 전해주고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 : 강론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게 쉽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은 특히 좋다.

김 수녀 : 교황 강론은 워낙 뛰어나다. 특히 성경의 언어를 현장의 구체적 언어와 접목시켜 전달하는 데 발군이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경 말씀을 발췌해서 잘 말씀해 준다. 이번에 선택한 복음도 놀라웠다.

최 신부 : 복음 구절 선정도 탁월했다. 교황의 통찰에 놀랐다. 강론 첫 구절이 ‘저녁이 되었다’(마르 4,35)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요즘 저녁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씀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예수님의 빈 무덤이 생각났다. 이른 새벽 여인들이 찾아갔던 동굴 안 예수님의 빈 무덤 말이다. 아주 어둡지 않은 이른 새벽은 저녁과 비슷하다. 구원과 희망의 빛이 필요한 때다. 강론의 첫 시작이 예수님 부활 시기를 준비하는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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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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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돌풍과 풍랑을 겪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상황이 지금과도 꼭 맞는다.

곽 신부 : 마르코 복음 그 구절은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바로 거기에 메시지가 있다. 교황도 그 부분을 짚어 냈다. 고물은 배 뒤편이다. 풍랑이 일 때 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고물에 누워 계셨으니 풍랑이 일 때 가장 먼저 알아채셨고 가장 먼저 물에 맞으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하게 계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기 전에 먼저 고통받으셨다. 고통과 두려움을 나 몰라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먹고 있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상황과 너무 잘 맞는 훌륭한 대목이다. 교황의 강론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교황이 예수님과 정말 가깝게 만나고 있음을 느꼈다.


▲ (왼쪽)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마르첼로 성당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오른쪽)교황이 성체가 든 성광을 들고 강복하고 있다.



사회 : 교황은 강론 후 로마 시민들의 안위이신 성모 이콘과 성 마르첼로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다.

최 신부 : 천주교 신앙에서 볼 때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분은 성모님이다. 성모님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모든 돌봄을 제공하는 자비로운 어머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위기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께 전구를 청해왔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 수녀 : 방송을 통해서 전례에 참여했는데 카메라가 계속해서 십자가를 보여줬다. 전례를 주례한 건 교황이었지만 전례의 실질적 주인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이콘도 십자가 옆에 비켜서 있는 모습이었다. 온전한 주인공이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중심의 자리를 내어주는 연출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 :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도 이어졌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얻을 때 성체 앞에 모인다.

최 신부 : 성체 조배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성찰하며 내가 얼마나 미소한 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지혜와 은총을 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성체 조배를 하면 성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을 체험하게 된다.


 

사회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이렇게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이 생기는 것인가.

김 수녀 : 하느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느님께서 허락하는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고통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단절된 데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인간이 스스로 배제한 것이다. 생명이 단절된 상태이니 당연히 죽음과 고통, 억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 책임을 두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결국엔 하느님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곽 신부 : 교황 강론에 분명히 나온다. 제자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은 가만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받으시고 고통에 함께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선 고통을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최 신부 : 예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반복하는 질문이다. 주님의 섭리 아래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섭리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고통을 반성과 회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이 함께해야 한다. 고통은 형제적 협력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제도와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고통은 이러한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데 이런 게 모두 주님의 섭리다.


 

사회 : 신학 안에서도 고통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지 않나.

곽 신부 : 고통과 관련된 물음은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굉장히 실존적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어디서 어떻게 고통을 당했는지 묻지 않으셨다. 그저 고통에 함께하며 같이 아파하셨다. 측은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이가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해주는 분이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은 당신 삶으로 대답해 주셨다.
 


 

사회 :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 신부 : 교황이 강론 중에 평범한 분들을 열거했다. 의사, 간호사, 미화원, 슈퍼마켓 직원…. 한 분 한 분 부르시는데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차를 마시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평범한 일이 갑자기 평범하지 않게 됐다.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김 수녀 : 공동체 수녀들과 나눔을 했는데 한 수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특정 나라, 특정 동물, 특정 종교 탓으로 돌렸는데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집중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성찰에 공감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닐 때 나오는 부조리와 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곽 신부 :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이 정말로 어려운 일인지를 식별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하다. 이 시대 사목자와 신앙인은 무엇이 내 삶을 이루게 하는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삶은 혼자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 : 그리스도인에게는 희망이 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 놓지 말아야 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최 신부 :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내 희망을 생각했다. 희망의 근거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격리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각자의 집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김 수녀 : 희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가운데 하나로 교황은 슈퍼마켓 직원과 같은 이들을 예로 들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품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하느님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선 가난 속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경외가 있을 때 우리는 분명 호수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희망한다.

곽 신부 : 희망의 근거야말로 바로 예수님 모습이다. 예수님께선 절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잊지 말자.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