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세속화, 하느님 신비와 거룩함 드러낼 기회

(가톨릭평화신문)
▲ 교회는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개인화된 믿음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참된 ‘이웃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봉사자들이 성남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되는 세속화

인간이 이룩한 과학적 성과들은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서로의 관계를 멀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강조한다.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는 점점 더 신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긴박한 시기에 사회와 공감대를 갖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종교의 행태와 대비해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오히려 종교의 제사장처럼 치료라는 거룩한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종교가 사랑과 자비의 신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통해 죄지은 인간을 벌하는 신의 모습을 부각해 사람들을 위협해서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면, 이는 초월적인 신을 거부하고 성스러움보다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경향의 ‘세속화’와 진배없을 것이다. 이단 여부를 떠나서 신천지와 일부 극우 교회처럼 반사회적 태도로 사회의 요구와 관심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인 점에서는 이런 세속화와 다를 바 없다.

이미 한국 천주교회는 ‘사회적 공감대’를 가지고 국난의 시기에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 기간 신자들이 참여하는 미사를 중지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 시기에 종교가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가톨릭 내부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엄청난 결단이다. 미사 중지는 코로나19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어서 사람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사회 참여적인 공동선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많은 개신교 교회와 불교도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예배와 불공을 중지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지금 상황에서 이 세상 안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전부일 수는 없다.

▲ 코로나19로 텅 빈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인간적 갈망 채워줄 종교의 역할

코로나19 사태로 팽배해지는 종교에 대한 불신은 종교 내적으로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온 ‘세속화’를 한층 더 가속하는 모양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자세는 교회가 국가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신앙 공동체로서 사회에서의 역할과 과제라는 측면에서는 소극적인 대처는 아닌가 하는 염려를 낳게 한다. 더욱이 사회 제도와 종교적 가치가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면서, 비종교적 가치를 내포하는 사회 제도에 교회의 권위가 종속되는 현대 교회의 세속화가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통해서 더욱 가속되어 종교적 가치가 희석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교회 내부의 측면에서 볼 때, 신앙생활을 삶의 원천이자 활력소로 삼아온 신자들은 미사가 거행되지 않는 시기에도 교회 매체에서 제공하는 영상 미사와 기도 등으로 믿음에 대한 갈증을 간절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반면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도 없고, 공동으로 신심 생활을 해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신앙생활과 더욱 멀어짐으로써 ‘탈 종교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만일 교회의 역할이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정당성을 채워주는 것뿐이라면, 교회는 세속 사회에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이념이 채워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으로써 신에 대한 믿음을 이어주고 깨우쳐 주는 종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현재 상황에서 당연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하지만, 이 거리가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인간이 외적인 것에 휘둘려서 보지 못하고 애써 외면했던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갈망은 더욱더 간절해지고 절실해질 것이다.



교회에 주어진 참된 이웃 사랑의 과제

그러므로 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개인화된 믿음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참된 ‘이웃 사랑’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한다. 신앙적 차원 없이도 이웃 사랑이나 타인에 대한 자비는 인지상정으로 누구나 보여줄 수 있지만, 이것이 신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어떻게 다른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지금 교회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조리’와 같은 공포스러운 재앙이 닥친 현재 상황에서는 비인간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사람들을 매도하고 비난하거나 국가의 관문을 서로 닫아걸고 자기들만의 고립주의를 고수하려는 태도가 그러하다. 이는 명백히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반종교적이다. 반면에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 나가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참으로 마땅하고 종교적일 것이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은 후자와 같은 역할이며,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 세속화가 진행되는 한가운데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바이러스의 재앙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관계와 인간관계의 단절, 그리고 혐오와 분열을 치유하고 돌보는 과제가 교회에 주어져 있다. 신앙은 단순히 개인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삼위일체라는 신적 공동체를 통해서 구현되는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눈으로 보고 공동선 실천하자

우리의 신앙이 나 개인만의 성화와 나만의 믿음이라면 이는 소위 세속 사람들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적 가치관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세속화된 사회에서 세속화라는 운명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세속 안에 숨겨져 있는 본래의 가치인 거룩함과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낼 사명을 안고 있다. 우리 자신이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과 세상을 성화시키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사실은 한 마리의 같은 토끼이다. 우리 신앙인도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때문에 텅 빈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 홀로 서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있고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모두 같이 노를 젓고 격려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속화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삶은 결국에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서 종교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풀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교회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심히 지나쳐왔던 소중한 가치들과 의미들을 신앙의 눈으로 통찰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공감을 얻고 공동선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께 관심을 기울이는 그만큼 다른 이웃에게도 관심을 보이기를 바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세상에서 멀어진 물리적 거리를 극복해야 할 교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 김형수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