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탕자가 오늘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부활의 공동체

(가톨릭평화신문)
▲ 늘푸른자활의집은 중독 치료의 하나로 서예교실을 운영한다. 늘푸른자활의집 제공

▲ 늘푸른자활의집은 중독 치료의 하나로 서예교실을 운영한다. 늘푸른자활의집 제공



경기도 문산.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시골 길을 따라 달린다. 어느새 복잡한 도로는 점점 멀어지고 눈앞에는 산과 들이 펼쳐진다. 얼마쯤 들어갔을까? 언덕 위에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붉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중독에서 벗어나 자활을 준비하도록 돕는 늘푸른자활의집(시설장 조창운 수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중독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회복으로 가는 나침반을 선물하는 늘푸른자활의집을 소개한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헤어 나오기 힘든 중독의 늪

중독은 알코올ㆍ약물ㆍ도박ㆍ게임 중독 등 여러 가지다. 한 가지 중독만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중독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독은 서서히 일상에 파고든다. 그리고 일상을 위협하다 결국에는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중독 중 하나인 알코올 중독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외부와 모든 것들을 차단한 채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과거 안 좋았던 기억 속에 빠져 살며 자기 학대를 반복한다. 그렇게 중독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다.



18가지 생활철학 지키며 몸도 마음도 회복의 길로

“세상 어디에도, 마침내 저 자신에게서도 피난처가 없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늘푸른자활의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늘푸른자활의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노숙인들이다.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혼자선 일어서기도 쉽지 않다.

늘푸른자활의집은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늘푸른자활의집 거주 가족들의 일과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눔이다. 18가지 생활철학 중 그날의 생활 철학에 맞춰 나눔을 하고 하루를 보내기로 다짐한다. 나눔이 끝나면 각자 속한 부서에서 일한다. 생활 관리부와 농장 화단부, 작업 치료부, 주방 영양부, 시설 관리부 등 모두 5개 부서가 있다. 새로미와 바르미, 이끄미 등 지위와 책임도 부여한다. 사회생활을 위한 연습인 셈이다.

음식은 늘푸른자활의집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다. 육체적으로 먼저 회복해야 정신적으로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중독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자가 방문한 날 점심 메뉴는 갈비찜과 홍합 된장국, 나물 반찬과 장아찌 등이 자율 배식으로 제공됐다.

정신적인 회복은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돕는다. 자조 모임을 통해 마음속 상처와 아픔을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치료는 보통 6개월이 걸린다. 거주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지지해주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정신적인 회복까지 끝나면 다음 단계는 사회복귀 지원이다. 거주 가족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취업 후에도 일정 기간 늘푸른자활의집에서 생활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거주 가족들이 자립한 후에도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준다. 자립자들도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통해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중독을 이겨낸 사람들

늘푸른자활의집 입소는 주로 거리 상담을 통해 이뤄진다. 거주 가족이 대부분 노숙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 상담은 노숙인들에게는 ‘같이 살아보자’는 구원의 손길이다.



이세바스티아노씨도 2011년 서울 영등포역에 술 한잔 하러 갔다가 거리 상담을 나온 조창운 수사를 만났다. 그리고 “집에 가자”는 조 수사의 말을 듣고 술김에 늘푸른자활의집에 들어왔다.

이씨는 운영하던 공장이 IMF 때 부도가 나 10여 년 노숙생활을 했다. 노숙하며 험하게 살았다. 하지만 늘푸른자활의집에 들어오면서 이씨는 새로 태어났다. 지금은 9년 넘게 단주하며 행복한 직장생활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그때 수사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마티아씨는 동네에서 초빼이(술을 많이 좋아하고 많은 양을 마시는 사람)로 불렸다. 조씨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무기력하게 술만 마시는 모습을 보고 홧김에 술을 마셨다. 자신이 술을 다 마셔버리면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조씨는 한번 술을 마시면 몇 달씩 술을 마셨다. 하루는 술을 마시다 음식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3일 만에 병원에서 눈을 뜬 조씨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위의 추천으로 2005년 늘푸른자활의집에 들어와 14년 넘게 단주하며 요양보호사로 생활하고 있다.

이요한씨는 가족의 권유로 2011년 늘푸른자활의집에 들어왔다. 이씨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알코올 클리닉에서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화가 난 가족이 이씨를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 2개월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들어온 늘푸른자활의집은 이씨에게 천국이었다. 모든 것이 열려 있었고 마음대로 나갈 수도 있었다. 성당도 있었다. 장기 피정을 한다는 생각으로 늘푸른자활의집 생활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늘푸른자활의집에서 생활하면서 잘못 살았다고 느꼈다”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급여의 20%를 기부하며 살고 있는 그는 중독자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꿈을 꾸고 있다.





늘푸른자활의집 시설장 조창운 수사


▲ 조창운 수사



조창운(그리스도수도회) 수사는 2017년 8월 늘푸른자활의집 시설장 소임을 맡았다. 2년 넘게 늘푸른자활의집을 운영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조 수사는 “자립 가족들이 보통의 사람들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더없이 기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립 가족들이 사회로 복귀해 후원자가 돼서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활의집 거주 가족들을 후원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립 가족들이 중독 재발로 인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볼 때는 괴롭고 힘들다. 조 수사는 “중독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인데 이분들이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죽음까진 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정말 괴롭다”며 “얼마 전까지 연락됐던 분이 연락이 끊기면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 때문에 조 수사는 항상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온전한 삶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조 수사는 “‘함께’라는 말을 들으면 늘 마음 한편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중독으로 인해 소외된 이들과 삶을 ‘함께’ 나누며 그분들의 안식처가 되고 그분들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했다.

후원 및 자원봉사 참여 문의 : 031-953-3492, 늘푸른자활의집 도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