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회 (하)

(가톨릭신문)

세스페데스(G. de Cespedes,1551~1611) 신부는 예수회 회원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찾은 인물로 꼽힌다. 스페인 출신으로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함께 조선 땅을 찾아와 종군 신부로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 한 사람인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 가서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을 시기에 만난 사제도 예수회 회원 그랑몽(J. J. de Grammont, 1737~1812?) 신부였다. 이승훈은 그때 예수회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 등 다수의 서적을 들여왔다.

한국과 예수회가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54년이다. 한국교회는 한국 젊은이들의 영적·지적 교육을 위한 가톨릭 대학 설립을 교황청에 지속해서 요청했고, 비오 12세 교황은 이를 인가해 예수회에 책임을 맡겼다.

그 기초 작업을 위해 당시 일본 상지대학에 있던 게페르트(T. Geppert) 신부가 방한하면서 학교 용지 매입 등 실질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예수회는 미국 위스콘신 관구에 학교 설립 임무를 부여해 그 이듬해 미국 위스콘신 관구가 진출했고 예수회 한국지부가 설립됐다.

위스콘신 관구에서 파견된 첫 신부들은 1955년 6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0년 4월 18일 166명 학생으로 서강대학교의 막을 올렸다.

이즈음 광주대교구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대신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고 예수회에 그 책임을 부탁했다. 1962년 바쿠버(Andrew Bachhuber) 신부가 광주가톨릭대학교 초대 학장이 됐으며 이후 예수회는 1969년 교구로 이양할 때까지 학교를 운영했다.

1985년 정한채 신부를 제1대 지구장으로 독립 지구로 승격된 한국 예수회는 2005년 예수회 한국진출 50주년 기념 및 관구 승격이라는 기록을 새롭게 쓰게 된다.

현재는 서강대학교를 통한 교육 사도직뿐 아니라 영성 사도직, 사회 사도직, 청년 사도직, 매체 사도직 등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자비를 실천한다.

예수회는 2016년 제36차 총회를 통해 ‘예수회가 사도직을 수행할 때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에 대해 숙고하기로 결의했다. 이어 약 2년에 걸쳐 모든 예수회원과 협력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공동식별 끝에 ‘예수회 보편적 사도적 선택’(UAP)을 선정했다. 한국 관구도 ‘예수회 보편적 사도적 선택’에 따라 지난해 9가지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내용은 ▲이냐시오 영성대학 ▲이냐시오 영성에 기반한 협력자 양성 ▲이냐시오 영성 용어 소위원회 ▲이냐시오 영성에 기반한 사회적 의제 발굴 및 운동 조직화 ▲대북 협력 ▲청년 영신수련 모임 ▲영성미디어 플랫폼 개발 ▲청년 서강 지원 포럼 ▲정의, 평화, 창조보전 활동의 공식적 지지 및 지원 등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