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하나로 이끌 새 목자 탄생에 환호… 희망찬 미래 꿈꾸다

(가톨릭평화신문)
▲ 제5대 제주교구장 착좌식에서 문창우 주교가 어린이들에게 목장을 전달받고 있다.

▲ 제5대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착좌미사에서 이솔라 디 빠체팀이 말씀 선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제5대 제주교구장에 착좌한 문창우 주교가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고 있다.



제5대 제주교구장 착좌 미사가 봉헌된 11월 22일.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 목장 안에 있는 삼위일체대성당 일대는 잔잔한 평화와 희망찬 활기가 넘실댔다. 넓은 푸른 초목에는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었고, 새 교구장 탄생을 축하하러 온 신자들은 일찍 도착해 새미 은총의 동산을 거닐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새 교구장과 제주교구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제주교구 출신인 문창우 신임 교구장은 격려와 축하 인사 속에 무거운 책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전례 담당은 청소년·청년들이


오후 2시, 교구 사제단을 앞세운 주교단 입당 행렬로 착좌 미사가 시작됐다. 교구 청년 밴드 ‘열세 번째 사도들’의 성가 반주가 생기 넘치는 청년 미사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착좌식은 긴장감 속에 장중하게 진행됐다. 모든 미사 전례 담당을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로 구성한 것은 제주의 미래인 젊은이들과 교구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다.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의 축사로 착좌식이 시작됐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교황의 축복을 전하며 “훌륭한 인품을 지닌 문 주교님을 위해 계속해서 사랑해주시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18년간 헌신해온 전임 교구장 강우일 주교에게는 “변함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며 그들을 주님의 제단으로 인도하는 슬기로운 아버지 역할을 하실 거라고 확신한다”고 인사했다.



착좌 순간 울컥한 문 주교

착좌 미사의 절정은 문 주교가 강우일 주교의 인도로 교구장좌에 착좌하면서 이뤄졌다. 착좌하는 순간 울컥한 문 주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거운 책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목자의 모습이었다. 큰 박수가 오랫동안 터져 나왔다. 이어 문 주교는 유민성(요한 보스코, 초6)ㆍ고가연(프란치스카, 초5) 어린이가 건네는 목장을 받아들었다.

이어진 말씀 전례 시간에는 ‘이솔라 디 빠체’ 팀이 말씀 모시기 퍼포먼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복음을 갈구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형상화했다. 실제로 휴가를 나온 군인과 암 투병 중인 환자가 퍼포먼스에 참여해 큰 울림을 남겼다.

문 주교는 강론대에서 유머로 입을 열었다. 1969년 달나라에 간 아폴로 11호의 출발지는 미국 올랜드교구에 속해있는데, 올랜드교구장 보더즈 주교가 바티칸으로 교종을 방문했을 때 “교회법에 새로운 곳은 그것을 발견한 출발지의 교구이니 제가 달나라 교구장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문 주교는 “영어로 문(moon)은 달을 뜻한다”며 “오늘 이 자리에 진짜 달나라 교구장이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고난의 땅 제주에 참된 부활의 빛을


이어 문 주교는 자신의 사목표어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 17, 21)와 문장을 설명하고, 제주가 당면한 현실을 언급했다. 그는 제주의 심장부를 할퀴고 있는 자본주의의 횡포를 언급하며, 제주 4ㆍ3의 아픔이 자리한 고난의 땅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제주의 현실은 단순히 인간적 잣대가 아니라 참된 부활의 빛으로 나아가는 하느님 섭리의 순간임을 고백했다.

착좌 미사에 참여한 문 주교 부모 문종수(요셉, 89, 제주 동광본당)ㆍ김양희(아가타, 87) 부부는 “많은 이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교구장님이 되시길 바란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문 주교를 처음 신앙의 길로 이끌었던 큰 누나 문정인(가타리나, 62)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문씨는 “신앙을 이끌어줄 때는 교구장까지 될 줄은 차마 몰랐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동생이) 주교로 임명됐을 때 하느님께서 정말 다 지켜보신다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동생 문창건(제주 화순본당 주임) 신부도 “교구장이 된다는 것은 큰 짐을 지는 것인데 기쁘고 겸손하게 교구장직을 수행하시길 바란다”면서 “동생이자 사제단의 일원으로 함께 기도하고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문 주교와 ‘40년 지기’로 호형호제하는 임종태(아우구스티노, 포콜라레운동 동아시아지역 책임자)씨는 “문 주교님은 소탈하고 서민적이며 격식과 권위 없이 사람들을 품을 줄 아는 분”이라며 “사제의 본보기가 되는 사제상을 몸에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 문창우 주교 부모 문종수ㆍ김양희 부부와 누나 문정인 씨가 문 주교 착좌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힘 기자




비를 몰고 다니는(?) 주교


착좌 미사는 안개비가 흩뿌리면서 시작됐다. 제주교구 운전기사 사도회 회원들은 우비를 입고 차량 주차 봉사를 했다. 코로나19로 미리 좌석표를 받은 신자들만 손 소독을 하고 발열 체크를 한 후에 입장이 가능했다.

운전기사사도회 김영수(베드로) 회장은 “문 주교님은 제주도에서 성품이 제일 좋으신 분”이라며 “제주교구 출신인 만큼 어려우신 분들 두루두루 잘 살펴주시고, 신자들과 단합하는 모습 보여주시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착좌 미사 중 성찬 전례에는 교구와 제주도를 교구장에게 맡겨 드린다는 의미로 제주의 자연과 삶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봉헌됐다. 제주 4ㆍ3을 상징하는 동백꽃과 제주 해녀를 상징하는 테왁, 돌고래와 조랑말, 등대 모형을 전달했다.

미사 후 축하식에서는 전임 교구장에 대한 감사, 신임 교구장에 대한 격려와 박수가 오갔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축사에서 “하느님께서 문창우 주교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3년 전 주교 서품받을 때 그해 여름이 가물었는데 비가 많이 왔다”며 “문창우, 우(雨)가 비를 동행하고 본명도 ‘비오’”라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염 추기경은 “오늘도 비가 오겠구나 했는데 역시 그랬다”면서 “하느님이 제주교구를 사랑하셔서 사랑과 은총을 듬뿍 담은 새 주교님을 여러분의 목자를 선물로 주셨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교구 청년 밴드는 축가로 주교 서품식 때처럼 문 주교가 좋아하는 포콜라레 젠 성가 ‘나의 정배’를 불렀고, 문 주교는 따라 불렀다.

문 주교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김윤서(마리아, 신성여고2) 학생은 “주교님이 신성여중 중학교 교장이셨을 때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누구보다도 잘 들어주셨다”면서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교장 신부님이었던 만큼 신자들에게 사랑받는 교구장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축하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