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6)천진암성지

(가톨릭신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자리한 천진암성지(전담 송병선 신부)는 한국교회의 신앙이 싹튼 곳이자 그 주역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입구에 자리한 ‘한국 천주교 발상지’라는 표지석의 문구 그대로 천진암(天眞庵)은 18세기 한국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천진암 강학이 열렸던 장소였다. 18세기 조선에서는 학자들이 한적한 절간 등에서 스승을 중심으로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던 일종의 학술모임인 ‘강학회’(講學會)가 활발히 진행돼 왔다.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는 ‘서학’ 강학인 1777년 주어사(走魚寺), 1779년 천진암 강학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권철신(암브로시오)·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승훈(베드로) 총 5명의 신앙선조들은 이곳 천진암에서 5년 여간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진리를 추구해 나갔다. 이는 곧 학술모임을 넘어 교리 및 기도모임으로, 더 나아가 아침 저녁기도와 주일, 단식과 금육을 지키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천진암 강학회에서 활동한 이들 5명의 신앙선조는 한국교회의 문을 여는 데 헌신했다. 우선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은 1784년 북경에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갖고 귀국한 이승훈은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 김범우(토마스)와 한국교회 첫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를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앙을 전파했다.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도 1784년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충남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과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을 입교시켜 충청, 전라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했다.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최초의 한글 천주교 교리서 「주교요지」를 집필하고, 한국교회 최초의 교리교사회라 할 수 있는 ‘명도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천진암은 신앙 선조들이 자율적인 진리 탐구로 이뤄낸 한국교회의 시작점이자, 한국교회가 뿌리 내리는 바탕이 돼 그 가치를 빛낸다.

천진암이 성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78년 신앙 선조들의 중요성을 인식한 당시 신장본당 주임 변기영 몬시뇰이 해당 부지를 매입, 2년 뒤 하느님의 종 이벽의 묘 발굴 및 이장을 시작하면서다. 이후 천진암에는 1981년 복자 정약종의 묘와 하느님의 종 권철신·권일신·이승훈의 묘가 옮겨졌다.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사업이 종료된 1984년에는 본격적으로 성지 개발에 들어갔다. ‘세계 평화의 성모상’과 ‘대형 십자가’를 조성했고, 2079년 준공을 목표로 부지 1만900㎡에 달하는 대성당을 건립하고 있다.

천진암성지위원회가 1980년 작성한 ‘천진암 성역화의 의미와 방향’에 따르면 “성역화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정신과 업적의 전승’”이라며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성업을 이루신 우리 성현들의 진리 탐구정신과 천주공경 신앙은 오늘의 우리뿐만 아니라 내일의 후손들에게까지 계승 발전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성역화의 목적이요, 방법이며, 방향”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그 목표와 방향대로 성지는 신앙 선조들을 발굴하고자 노력해왔다. 우선 천진암 강학회를 이끈 신앙 선조 5위 묘역을 비롯해 성 정하상(바오로),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복자 정철상(가롤로)의 묘를 조성했다. 신앙 선조들의 친필과 유물을 담은 박물관도 세웠다. 강학회가 열렸던 천진암 강학당 터에는 비석과 함께 신앙선조 5위의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와 안내도를 세웠다. 성지는 신앙 선조 공경과 유해 보존을 위해 198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성 정하상(바오로)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지는 현재 두 성인의 유해를 모신 성모경당에서 매 미사마다 순례자들과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200주년 탄생 기도문을 봉헌하고 있다. 교구 지정 순례지인 만큼 신자들은 이곳에서 전대사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및 순교자 성월을 맞아 9월 5일부터는 매 주일미사 후 성지 전담 송병선 신부 주례로 두 성인의 유해 강복을 하고 있다.

송 신부는 “성지는 성 김대건, 최양업 신부와 같은 이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진리를 찾아 헤매던 신앙 선조들의 혼이 서려있는 장소”라며 “촛불을 밝히고 진리를 탐구했던 장촉담경(張燭談經)의 모습으로 신앙을 찾고, 이를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본받고 실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박해시기 신앙선조들이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애썼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기억했으면 한다”며 “성지를 방문해 각자 신앙생활을 다시 점검해보고, 선조들의 마음과 정신을 곱씹어 보며 이를 통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