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23)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28)

(가톨릭평화신문)


우리는 모두 부르심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다. 각 사람은 받은 부르심에 따라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섬세하게 하느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삶이라는 것을 사도직 현장에서 종종 체험하곤 한다.

수도회 입회(성가소비녀회)를 결정하고 가족들에게 수녀원 입회 이야기를 했을 때 “굳이 수도자로 살지 않아도 교회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왜 그 길을 가느냐?” 하며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반대와 설득을 뿌리치고 이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삶의 새로운 가치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해야 책임도 지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하느님의 계획은 어떤 힘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도직을 경험하지는 못하였지만 특수사목의 현장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 것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계획하신 놀라운 일이었음을 자주 느낀다.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 와서 때로는 긴박하고 긴장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생길 때 놀랍게도 해결사로 나서시는 하느님의 개입에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단주나 단 도박을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분들이 고비고비를 넘기면서 끝까지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역시 “하느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자 즉시 어망을 놓고 따라나섰던 제자들의 태도처럼 마치 생존의 끈처럼 물질과 행위로 의존되어 있던 것들을 철저하게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삶은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응답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선택했던 나의 성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은 “원칙적인 일상의 삶”을 재정립해야 하므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해야 하고, 그 도전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할 수 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크신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전적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들어야 한다.

수녀원에 입회하여 낯설고 어설픈 환경에 적응하고, 수도회 정신과 규칙 생활을 익히고 기도 생활을 훈련하는 것처럼 새로운 삶의 도전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의 힘을 믿고 가는 여정 자체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수도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나는 회복하는 분들에게 “선생님은 예수님의 멋진 제자” “이제 수녀원에서 첫서원을 하신 서약자이십니다”라고 격려를 드리면 “그럼 나도 수녀님처럼 옷 입는 건가요” 하고 호탕하게 웃으신다. 치료자로서 중독에서 회복하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이미 수도복 그 이상의 옷을 갈아입으셨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각자의 소명을 다하도록 부르시고 함께 가시고 계시니 삶의 색깔은 다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위치에서 의미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도 큰 은총인지를 감사드리게 된다. 그동안 우리 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서 회복하고 계시는 많은 분, 그리고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모든 분이 더욱 항구하게 끝까지 회복의 길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함께 기도드린다. 그 길이 또한 성소에 응답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