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순교자 성월’

(가톨릭평화신문)
▲ 김성태 신부



개(浦)가 육지 깊숙이 치고 들어온 형국이라 ‘내포’(內浦)라고 불렀단다. 그래서 내포에는 검은 흙이 많다. 차진 개흙이 삽자루에 자꾸만 엉겨 붙었을 텐데, 개펄 자락에 둑을 쌓고 발로 다져서 척박한 땅이나마 새 터를 일구어냈다. 거기 쏟아낸 땀과 피와 눈물이 거름이 되는가 싶더니, 검은 박토는 어느새 탐스러운 곡식을 자아내는 옥토가 되었다.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창세 1,11) 천주의 명을 따라 그들의 손과 발이 창조의 업을 이어 왔다. 황금빛으로 물든 대지는 그렇게 천주의 뜻을 이루어내고 있다.

황금빛 내포를 닮아서일까. 늘 푸르른 소나무라지만, 이파리의 끄트머리가 노란빛의 단풍으로 소박하게 물들었다. 알곡만 남고 풀과 쭉정이는 말라버리는 게 그의 속성이라 쓸쓸한 가을을 ‘숙살’(肅殺)의 시기라고 했다던데, 저렇게 곱고도 이렇게 풍성한 내포의 자태는 죽음을 앞둔, 죽음을 향한 절체절명의 아름다움이었나 보다.

가을에는 순교자가 많다. 그 옛날 천주를 알지 못하는 나라님들이 ‘숙살’의 때를 기다렸다가 칼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야 천행을 거스르지 않고, 그래야 불행을 피한다고 생각했더란다. 추분이 깃든 9월에 순교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다. 9월 16일, 첫 사제 김대건이 메마른 풀과 함께 쓸쓸히 죽어간 이유이다.

세속의 논리 속에 떨구어진 순교자의 피가 내포를 촉촉하게 적시어 오늘처럼 황금의 천상 빛깔로 물들여 가고 있다. 세상은 불운을 피하려고 9월에 칼을 들었지만, 순교자는 우리에게 축복의 가을을 선사하고 있다.

‘순교자 성월’이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순교자가 많은 9월이라 순교자 성월이 되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9월이 순교자 성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게 채워지지만, 세속의 논리를 이겨낸 순교자의 축복이 더 고마운 은총의 계절이다.



김성태(대전교구 솔뫼성지 전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