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7)결혼하는 젊은이들에게

(가톨릭평화신문)
▲ 부부 간의 우정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다. CNS 자료사진


사무실 바로 옆에 거대한 웨딩홀 건물이 있다. 주말만 되면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왁자지껄 시끄럽지만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좋다. 결혼의 달 10월에는 더 분주해 보인다. 가끔 차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의 풍광을 바라본다. 격식 있는 정장으로 차려입은 수많은 사람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 달려가서 악수하고 포옹하며 깔깔깔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 쉴 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인생을 꾸려갈 신혼부부에게 축복의 기도를 보낸다.

한 젊은이가 요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곧 결혼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 좋아하면서도 가끔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많은 것 같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욱하는 성질 때문에 한번 화가 나면 가족도 못 말릴 정도라고 했다. 결혼하면 ‘잘 살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노파심이 들었다. 우연히 컴퓨터에 몇 년 전 결혼한 조카에게 보냈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곧 결혼할 젊은이에게도 편지를 써야겠다.

“우리의 사랑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큼 절대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구나. 사랑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기쁜 것도 아픈 것도 기대도 좌절도 모두 품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살다 보면 서운할 때도 미워질 때도 있겠지. 그렇다고 화난다고 화내고, 서운하다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으면 더 힘들어질 거야. 화가 날 때, 미워질 때, 억울할 때, 서운할 때, 우울할 때, 어떻게 이 감정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랑하고 서로 아끼면서 살면 참 좋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사랑이란 것이 살아있는 생물이라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움직인다. 불편한 것도 많아지고 완벽하지도 않아. 인스턴트처럼 금방 구할 수도 없고 유효기간도 짧은 천연이라서 고되게 땀 흘리며 가꿔야 하겠지. 그래서 사랑은 끊임없이 계속 돌보고 주의를 기울여서 인내해주어야 튼튼하게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잠시 욱하는 감정에 소중한 반려자에게 극단적인 언행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아주 잠시 멈춰 심호흡하자. 그리고 혼란스러운 너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해줘. ‘괜찮아. 사랑이 떠나서가 아니야. 단지 사랑이 커가기 위한 진통일 거야’라고. 억지로라도 눈감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말해봐. 물론 그렇다고 금방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지는 않을 거야. 우리의 뇌는 화난 감정을 쉽게 바꿔주지 않기 때문이야. 그런데 비밀이 있어. 말이나 행동을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바꾸면 감정도 따라온다고 해. 그러니까 밉고 싫은 감정이 생길 때 살짝 말이나 행동을 달리하는 거야. 굳게 닫힌 마음이 서서히 열릴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라도 소통은 해야 할 거야. ‘몸’이 아닌 ‘말’로 감정을 표현해봐. 연습이 필요해. 시작은 일단 ‘내 탓’으로 말이야. ‘네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말을 걸면 곧 ‘우리 탓’이 되기에 대화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져. 그리고 금방 내가 언제 화났느냐 싶게 행복한 감정이 생길 거야. 잊지 말자. 결혼생활에 있어 ‘소통’의 끈은 생명 줄과도 같다는 것을. 너무도 다른 남녀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소통이니까.”

대충 이렇게 편지를 쓰고 다시 읽다 보니 고리타분한 꼰대의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나서 결혼 준비하는 그에게 도리어 찬물을 끼얹는 격이 아닐까 싶어 또 걱정이다. 이래도 저래도 걱정인 것이 나이 든 탓일까?



성찰하기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사랑의 세 가지 조건

1. 부부의 사랑은 ‘우정’으로 이어져야 해요. 영성이 깃든 사랑, 바로 거룩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를 살레시오는 ‘우정’이라고 해요.

2. 부부간의 우정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 또 받아야 해요.

3.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줘요. 말, 톤, 억양, 눈빛, 행동, 태도로도 충분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