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은 ‘교황’, 대만·홍콩은 ‘교종’, 북한에선?

(가톨릭평화신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색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성 베드로 광장에 나와 수많은 순례객과 인사를 나눕니다. ‘일반 알현(general audience)’이라고 하지요.

교황님이 하얀색 전용 차량(SCV1)을 타고 모습을 나타내면, 광장을 가득 메운 순례객들이 손을 흔들며 “파파(Papa)~ 파파~”라고 외칩니다. 멋진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하기도 합니다. 순례객들은 교황님이 차를 타고 자신에게 가까이 올 때는 물론이고, 퍼레이드를 마치고 강론을 할 때에도 “파파~ 파파~”를 연호합니다.

Papa!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희랍어 ‘pppas’에서 유래되었답니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똑같이 Papa입니다. 파파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대중적인 호칭이지요. 영어로는 ‘Pope’이지만 영어권 사람들도 Papa라는 호칭을 즐겨 씁니다.

Papa를 동양의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있을까요? 정부나 교회가 교황(敎皇), 교종(敎宗), 법왕(法王) 등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사용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정부와 교회(천주교중앙협의회) 모두 ‘교황’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만과 홍콩은 정부와 교회 모두 ‘교종’을 공식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정부와 교회가 각기 다른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교황’으로, 중국 교회는 공식명칭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분 ‘교종’이라고 호칭합니다. 애국회의 일부 사제들은 ‘교황’이란 호칭을 선호하기는 합니다.

한국의 경우 일부 사제와 신학자 등이 교황 대신 ‘교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교종은 비공식 명칭입니다. 일본은 교황 명칭과 관련하여 특이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교회는 과거 오랫동안 ‘로마 법왕’이라는 공식명칭을 썼습니다. 그러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본 방문(1981년)을 계기로 교회가 ‘로마 교황’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 정부와 일본 교회가 38년간 각각 ‘로마 법왕’, ‘로마 교황’으로 달리 불렀지요. 언론매체는 정부 방침을 따라 ‘로마 법왕’으로 표기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일본 방문(2019년 11월)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로마 법왕’ 표기를 버리고, ‘로마 교황’을 채택한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 정부나 교회 모두 ‘로마 교황’, 줄여서 ‘교황’이라고 부릅니다. 일본 언론들도 당연히 ‘로마 교황’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북한은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요? 아직 공식명칭이 확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 문서에는 교황으로 쓰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법왕’으로 부르고 있다더군요. 지난해 북한 고위인사가 보내준 메시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법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교회도 한때 ‘법왕’이라고 부르는 등 Papa의 번역을 놓고 혼선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교황의 실체는 동일하고 변함이 없는데,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차이 같습니다. 서양의 표음문자 체계에서는 스펠링이나 발음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의미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표의문자인 한자의 경우 표기 방식에 따라 의미나 뉘앙스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교황과 교종과 법왕의 한자 표기에는 각기 다른 신학적,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흥미 있는 연구대상 같습니다. 한글은 표음문자입니다. 한자를 잘 모르는 한글 세대의 사람들이 교황과 교종의 차이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교황의 라틴어 공식명칭은 Papa 외에도 더 있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교황 명칭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줄여서 폰트 막스(PONT.MAX.)입니다. 이탈리아나 바티칸의 대성당이나 박물관 등의 조형물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미사 경본 등에서는 산토 파드레(Santo Padre)를, 교회법 관련 내부 문서에서는 로마노 폰티피체(Romano Pontifice)를, 바티칸 연감 등에서는 베스코보 디 로마(Vescovo di Roma)라는 명칭을 씁니다. 교황은 편지를 쓴 다음 이름을 적고 그 뒤에 그냥 ‘PP.’라고 적어놓기도 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