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5)성경 독서와 기억

(가톨릭평화신문)
▲ 허성준 신부



현대의 추론적인 묵상 방법들이 인간의 지성과 상상을 강조하는 반면에 초기 수도승 전통은 특별히 기억을 강조하였다. 초기 수도승들은 기도에 있어 모든 종류의 상상이나 개념들을 철저히 거부하였다. 이 점에서 에바그리우스는 기도할 때 어떤 이미지나 개념들에 집착하지 말라고 여러 번 권고하였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담화집」 제10권에서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이단에 떨어졌던 세라피온 압바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초기 수도승들은 이렇게 상상이나 개념의 위험성을 직시하면서 성경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에 간직하였고, 그 말씀을 끊임없이 암송하는 단순한 묵상(반추기도)을 실천하였다. 카시아누스는 순수한 기억은 마치 안전하게 만나를 보존시킬 수 있는 황금 항아리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우리의 기억에 저장할 필요가 있다.

수도승들에게 기억은 수도생활에서 아주 기본적인 요소였다. 그들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 성경에 대한 기억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초기 은수자들은 기억 속에 간직된 성경의 말씀을 다른 시간들 안에서 끊임없이 암송하는 수행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집트의 위대한 안토니우스 성인은 그의 기억 속에 성경 전체를 간직할 정도였다. 이 점에서 우리의 옛 조상들도 비슷하였다. 선비들이 읽은 책이라고 해야 권수로 따지면 몇 권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러한 반복적인 독서를 통해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는 그대로 그들의 삶 속에 체화되어 그들에게 세상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가져다주었다. 그 몇 권의 독서가 그들의 전 삶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파코미우스 성인 역시 처음에 은수자였던 팔라몬(Palamon)을 찾아갔을 때, 스승은 은수생활의 여러 어려움들을 설명해 주면서 동시에 하느님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하여 끊임없이 암송하는 수행을 언급하였다. 후에 파코미우스는 스승과 함께 살면서 금욕적인 삶과 동시에 기억 속에 간직된 성경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는 수행을 통해 더욱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수도원에 입회하려는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하는 암기력 테스트를 하였다. 더욱이 그는 기억 속에 말씀을 간직하려 하지 않는 자는 결코 수도원 안에 있어서는 안 됨을 강하게 권고하였다. 이렇게 기억은 그 당시 수도승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었던 의무 중의 하나였다. 기억으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암송하는 수행이 모든 사탄으로부터 수도승들을 지켜 주리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렇게 초기 수도승 전통에서 그토록 강조되었던 기억의 중요성은 중세에도 계속되었다. 성 티어리의 윌리암은 기억을 우리 신체의 위(胃)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행하는 매일의 독서 안에서 어떤 부분들을 우리의 기억에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결국 수도승 전통에서는 성경 독서가 우리의 기억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즉 성경 독서는 기억을 통해서 묵상과 기도 그리고 관상으로 나아가게 되고, 기억은 성경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르는 거룩한 곳이 되어 그 충만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독서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재빨리 읽고 끝낼 것이 아니라, 말씀을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자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