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5주일-일어나 비추어라

(가톨릭평화신문)
▲ 임상만 신부



예수님의 ‘산상설교’로 구성된 마태오 복음 5―7장은 ‘참행복 선언’을 비롯하여 내용 전부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말씀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가장 먼저 ‘여덟 가지 복’으로 사는 사람에 대해 언급하시며 이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강조하신다. 즉,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께 선택받았고,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여 사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참행복 선언’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 하시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일깨워주신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참행복 선언’으로 하느님 백성이 되었기에 이미 세상에 속해 있지 않지만, 아직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는 다르게 드러내야 할 사명과 정체성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과 빛’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갖는 사명과 영향력이다. 소금은 세상의 어떤 물질로도 낼 수 없는 독특한 짠맛을 가진다. 사실 이 짠맛 자체는 통증에 가깝다. 하지만 소금의 짠맛이 음식에 스며들면 그 음식 맛을 원래 맛 그대로 맛나게 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음식 맛을 좋게 내는 소금처럼 흰 ‘MSG’라는 조미료가 있다. MSG가 들어가면 모든 음식 맛이 좋아진다. 하지만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것을 넣지 않는다. MSG는 음식이 가진 고유한 맛을 죽이고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빛의 사명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들고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게 한다. 빛의 밝힘으로 세상이 의미를 가지며, 어둠을 넘어 서로의 정체를 깨닫게 해준다. 이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5)라는 말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영향력을 보이라고 권고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영향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소금은 음식의 참맛을 낼 뿐 아니라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고, 빛은 어둠을 밝혀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분되는 독특한 맛과 빛으로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하는 영향력을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영향력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에게 동일하게 드러나야 한다.

신학자 한스 큉은 “사제들이 교회를 향해서 파견된 성직자라면, 신자들은 세상을 향해서 파견된 성직자”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파견된 모든 분야에서 ‘예수의 제자’라는 의식을 갖고 세상과 구별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참행복 선언’이 완성되며 세상의 복음화가 이뤄진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며 당신 제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이르신다. 소금으로, 빛으로 세상에 합당한 영향을 미치라는 말씀이다. 소금은 식탁 위 소금통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을 때가 아니라 콩나물국에 적당히 들어갔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빛은 됫박으로 덮여서가 아니라 등경 위에서 주위를 밝힌다. 우리도 세상에 스며들고 세상 비추며 살아야 한다. 세상에 익숙해져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며 살지 않기를 노력해야 한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