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 6주일 - 더 나은 의로움

(가톨릭평화신문)
▲ 임상만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을 피하는 것, 명하신 것을 따르는 것,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 중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신앙생활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을 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문가로 보인다. 우선 그들은 율법을 613개의 조항으로 분류해 날마다 암기했다. 일주일에 이틀씩이나 금식하며 기도했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바쳤다.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철저히 지키는 열심을 보였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자신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나가 기도드릴 때에도 자신들의 열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종교적 공로 리스트’를 펼쳐내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모습을 반어적으로 책망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당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모든 율법을 문자로 해석해 이해하기에 급급했다.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은 단지 살인하지 않으면 그 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했다. 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지, 하느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모든 계명 안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자체가 복음적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과 율법은 단지 문자적인 측면으로만 해석되거나 외형적인 실천의 모습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지키되 먼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 23,23) 이들이 겉으로 볼 때는 세밀하게 계명을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태 23,5)”으로 하느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난 위선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믿었다. 율법을 통해 의로움을 드러냈고 그것을 자랑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5-6)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7-8)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가진 의로움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진 것이며, 그 믿음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난 의로움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더 나은 의로움’이란 바리사이들이 결코 깨닫지 못했던 하느님의 구원 방식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열심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구원론적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늘 보여주었던 ‘열심’뿐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를 믿고 그분이 드러내신 사랑을 우리가 행하고 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예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율법도, 우리의 열심도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