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왜 하필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가톨릭평화신문)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셔진 베드로 사도 성상 앞에서 축일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성상)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에 중세 때 교황 전통 복장을 하고 순례자를 맞이 한다. 이 성상은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놀포가 13세기에 만들었다. 【CNS 자료 사진】



베드로 사도는 어떤 분일까요? 성경을 한두 번이라도 접해 본 적이 있는 비그리스도인에게 베드로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 배신한 사람 아닙니까?” 베드로에겐 가장 아픈 말입니다. 성경의 맥락을 봐도 그럴까요?

2월 22일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베드로는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산(山)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대리인이며 초대 교황입니다. 예수님의 ‘최고 지도자 양성’이라는 시각에서 베드로의 삶을 묵상해 봤습니다. 예수님은 왜 당신의 대리인으로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떻게 베드로를 최고 지도자로 양성하셨을까.



보통 사람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큰 믿음

첫 번째 화두, 왜 베드로였을까?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 일찌감치 갈릴래아의 어부 베드로를 당신의 대리인으로 ‘찜’하셨습니다.(요한 1,42 참조) 당시 갈릴래아 어부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변변한 사회적 배경도 없는 촌부, 그냥 보통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마리아 사제운동(MMP)’을 창설하신 스테파노 곱비 신부를 떠올립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곱비 신부가 ‘내적 담화’ 형식으로 받은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정리해 놓은 책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사제에게」(가톨릭출판사)를 읽고 나서 예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곱비는 MMP 활동을 하면서 큰 의문을 하나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무능한데…. 성모님은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을까?’

성모님께서 1973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곱비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아들아, 가장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너를 택한 거다. 그래야 이 일을 너의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마리아 사제운동은 오로지 나의 사업이어야 한다. 너의 약함을 통해 나의 강함을 드러내고, 아무것도 아닌 너를 통해 나의 능력을 드러낼 작정이다.”

오로지 ‘나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대목이 큰 울림을 줍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 때 ‘자신의 사업’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긴 것이나, 성모님이 MMP 운동을 곱비에게 맡긴 것이나 그 취지가 같지 않나 생각됩니다.

두 번째 화두, 어떻게 양성하셨을까? 베드로는 예수님과 처음 만나 하룻밤을 묵은 날부터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을 걸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수모도 고통이었겠지만, 내부에서 벌어진 일로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셨고, 심지어는 사탄이라고 질책하셨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혹독하게 하셨을까요? 유독 베드로에게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베드로의 기본 자질(믿음)은 출중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엄격한 훈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베드로 훈육은 독특합니다. 베드로 스스로 인간적인 결점(죄)을 티끌 하나 남지 않게 노출(고백)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의 실수 중 대부분은 베드로가 저지른 것입니다. 복음사가들이 다른 제자들의 실수를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열두 사도의 좌장답지 않게 베드로의 실수가 현저히 많습니다. 결점 노출의 프로세스라 봐야 할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하시다

세 번의 배신행위도 이런 프로세스의 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노출된 결점을 모조리 제거(용서)하여 베드로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결점의 발본색원! 혹독한 담금질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베드로 훈육은 단순한 담금질이 아니라 치밀한 치유과정이었습니다.

‘최후의 담금질’이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로마 외곽으로 피신하려 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 앞에 나타나셨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인사하자, 예수님이 “나는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큰 충격을 받고 로마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로마 언덕 처형장에서 십자가형을 받을 때, 예수님처럼 똑바로 매달릴 자격도 없다면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