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 ‘스스로 죽음 선택’으로 오해 말아야

(가톨릭평화신문)
 
▲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 입원한 한 환자가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연명의료 결정이 죽음을 결정하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환자들에게 호스피스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연명의료 결정이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2018년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 더이상 치료 효과가 없는 연명의료를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정됐다. 연명의료 결정 여부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는 이들 대부분은 “아파 누워 있게 되면 죽는 것이 낫다”며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결정하는 추세다.

13일 서울의 한 보건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온 이순희(76, 가명) 할머니는 “연명치료 같은 건 받고 싶지 않다”며 “자식들에게 짐도 되기 싫고, 이제 나이가 있으니 아프면 빨리 가는(죽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내 또래 노인들은 다 비슷한 생각”이라면서 “딸에게도 혹시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연명치료는 절대 하지 말라고 일러뒀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는 20대 직장인 김영미(가명)씨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작성했다”며 “연명의료에 의존하며 사는 건 사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후 2년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이들은 57만여 명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3만여 건이 작성됐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 결정이 이뤄진 경우는 8만 건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는 “삶의 마무리에 있어 국민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고, 본인에게 시행될 의료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인식과 문화가 정착 중이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자기 결정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기 결정권을 앞세우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생명윤리학자인 정재우(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신부는 “삶과 죽음을 내가 결정한다는 관점은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찬성하는 노선과 같은 선상에 있다”면서 “법의 의미와 연명의료 결정 취지를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는 또 “일상에서 어떤 결정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명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며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는데, 생명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시 이 같은 문제를 우려해 2017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관한 지침과 해설’을 발표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죽음을 결정하는 문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 삶의 마지막 시기를 잘 보내는 방법으로 호스피스 이용을 적극 권장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평소에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남겨두는 문서로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지정된 등록기관에서만 작성이 가능하다.

연명의료계획서 : 말기 혹은 임종기 환자 등 병원에 입원한 이들이 병원에서 의사와 상의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결정을 남겨두는 문서다. 담당 의사가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