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6)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중)

(가톨릭평화신문)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자들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 원인은 초자연적이나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물리적 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믿는 물리적 힘이란 세상을 형성하고 움직이며 변화시키는 네 가지 힘, 즉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그리고 전자기력뿐이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에서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4가지 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학이나 심리학 같은 사회과학에서는 초자연적인 설명이나 미신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물리적인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지는 기대나 믿음이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피그말리온 혹은 골렘 효과가 대표적이다. 또한, 스스로 믿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자기실현적 예언도 비슷한 개념이다. 유사과학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 긍정/부정 생각은 실제로 긍정/부정 사건으로 이어진다) 역시 우리의 무의식적 정신세계가 실제적 현실 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런 심리적 현상들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실험 집단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사실이나 법칙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적인 신념이나 기대심의 효과가 특정 집단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삶의 지혜로 삼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혹은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웃을 일이 생긴다” 등의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특별히 웃을 일이 없어도 의식적으로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미소를 선사하는 사람은 확률적으로도 즐겁고 좋은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피그말리온 혹은 골렘 효과나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를 쉽게 인정한다. 이런 심리적 효과를 실제로 믿는 사람에게는 체칠리아씨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심리적 효과 이론을 앞세우면, 체칠리아씨는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을 나약하고 피해받는 존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이별하고 아버지와 새엄마 밑에서 자란 그는 이른 나이에 가정 폭력을 체험했고 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불행한 가정환경 안에서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사랑과 인정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심한 질책과 꾸중을 듣고 자라왔던 것이다. 불안과 공포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체칠리아씨는 자신이 늘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는 부정적 자기 이미지와 낮은 자존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결국, 자신을 사회적 약자, 피해자, 혹은 실패자로 규정한 그는 실제로 부정적 자기개념에 부합하는 삶의 체험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기대 효과나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로 체칠리아씨의 주관적 경험을 해석하기에는 좀 더 그 과정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신념의 힘이나 끌어당김의 법칙이 일리 있는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나약한 존재로 느끼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체칠리아의 심리적 역동이, 사람이 두려워 도망치고 있는 너구리의 발걸음을 돌려놓을 만큼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 좀 더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어떤 영성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까?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