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착취물 범죄… 인간 존중 교육 절실하다

(가톨릭평화신문)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 유포한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성교육을 넘어서는 인간 존중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생명윤리, 생명교육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여성을, 한 인간을 인격적 주체로 바라보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올바른 인간 존중 교육이 확산되기를 희망했다.

‘n번방 사건’은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의 성착취물을 돈을 받고 배포한 성범죄를 일컫는다. 대화방 가입 금액, 성착취 수위에 따라 대화방이 여러 개가 있어 ‘n번방’(n은 숫자를 뜻하는 Number의 첫 글자)이라 부른다. 3월 19일에는 n번방 중 하나인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혔다.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성을 상품화하고,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구 해소 대상으로 여겨 온 뒤틀린 성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는 “n번방 사태로 우리 사회가 그동안 여성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n번방 가담자들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여성을 수단으로 삼아도 괜찮다는 생각, 돈을 냈으니 여성을 마음대로 이용하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성범죄 피해 여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공감하지 못하고, 같이 즐긴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반인신매매 단체 탈리타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혜선(착한목자수녀회) 수녀는 “성폭력, 성착취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남기는데 남성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수녀는 “성범죄에 노출된 10대 여자아이들은 정신질환을 앓기도 한다”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치유되는 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성(性)을 생물학적 차원이 아닌 인간 존중의 차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은호 신부는 “성윤리는 나와 다른 성을 가진 타인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고, 넓게 보면 인간 존중, 생명 존중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또 “성은 부부의 일치 안에서 이뤄지는 생명 탄생과 직결돼 있기에 성이 지닌 총체적 의미를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 성교육 프로그램인 틴스타(TeenSTAR) 교사 김혜정(베로니카, 틴스타 프로그램 총괄 디렉터)씨는 “n번방 사태를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가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교회가 올바른 성교육, 인간 존중 교육을 하는 데 보다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인간 존중 교육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국회생명존중포럼 공동대표 이석현(임마누엘)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 34명은 2018년 11월 ‘생명문화교육지원법’을 발의했다. 가톨릭교회가 국회생명존중포럼과 함께 만든 법안으로 학교에서 생명교육을 시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의 무관심 속에 법안은 20대 국회 종료와 동시에 폐기될 처지다.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고 교육 효과를 보려는 세태도 문제다. 틴스타 프로그램의 경우 기본 교육 과정이 12주인데 일선 본당과 학교에선 12주라는 시간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김씨는 “일회성 강의로 변화를 기대할 순 없다”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안다면 교회와 학교, 사회가 앞장서서 교육의 장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