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3) 반추 기도의 개념과 기억

(가톨릭평화신문)
▲ 허성준 신부



우리는 앞에서 수도승 전통 안에서 되새김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의 어떤 구절을 반복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반추동물이 삼킨 음식물을 토출하고, 재저작하고, 재연화하여 완전히 자신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같이 반추 기도는 말씀을 온전히 나의 것이 되게 하는 독특한 수행이다. 원래 반추란 음식물을 위로부터 다시 게워내는 토출, 음식물을 다시 씹어 분해하는 재저작, 침이나 효소나 타액과 재혼합 그리고 다 분쇄된 음식물을 삼키는 재연화하는 네 과정을 말한다.

반추 기도에서 토출이란 성경 독서를 통해 기억이나 쪽지에 기억된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이다. 재저작은 말씀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을 말하며, 재혼합은 신ㆍ망ㆍ애 안에서 말씀을 되뇌는 것이며 그리고 재연화는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깊이 간직하여 하나 되는 과정을 말한다.

수도자들은 독서 시간에 성경 말씀을 소리 내 읽고 들으며 말씀을 기억에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일터에서 혹은 혼자 산책하거나 기도할 때 그 말씀을 토출해 내어 그것을 다시 천천히 되씹고 그 말씀을 마음에 재연화시킴으로써 온전히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단순하지만 독특한 묵상을 실천하였다.

반추동물이 음식물을 섭취할 때 일단 그것을 삼켜서 제1위에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다시 토출하여 되새김하듯이, 우리 역시 하루 중 아침의 적당한 시간에 성경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나의 기억이나 쪽지에 일단 간직해 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의 기억이나 쪽지는 반추동물의 제1위와 같은 기능을 가진다.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응답해야 할 많은 일과 바쁜 일정 속에 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성경 독서를 하고 말씀을 분명히 기억 속에 간직하였지만, 일상 속에서 떠올리려고 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억이란 100% 신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 쪽지 수행을 하도록 특별히 권고하고 싶다. 매일 성경 독서를 하고 끝마칠 때는 그 말씀들 가운데 하루의 영적 양식으로 삼을 한 말씀을 쪽지에 적고 일상 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언제든지 시간이 날 때, 일터나 휴식시간에 혹은 홀로 산책할 때 쪽지로부터 그 말씀을 떠올리고 천천히 되새김할 수 있다.

아니면 저녁의 적당한 묵상 시간에 그 구절을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반추해 볼 수도 있다. 대개 전통적으로 수도승들은 묵상 시간에 이러한 수행을 항구히 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이나 쪽지로부터 떠올리고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되뇌는 수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고, 그 말씀이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메시지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되뇌는 반추 기도의 수행을 한순간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