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8)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상)

(가톨릭평화신문)


어느 날 생태마을에서 진행하는 심리영성 피정에 60대로 보이는 단아한 옷차림의 어머니와 30대 초반의 딸이 사이좋게 참석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였다. 옆에 앉은 한 자매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드디어 그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두 분은 모녀지간이신가 봐요?”

“네, 그래요. 얘는 시집간 딸인데 제가 먼저 피정에 참여하자고 해서 같이 오게 되었죠.”

“아이고 얼마나 보기 좋아요? 엄마와 딸이 함께 피정도 올 수 있고 말이죠? 저도 딸이 있는데 워낙 고집도 세고 신앙이 없어서 이런 피정에 함께 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어요. 정말 좋으시겠어요…!”

“아…(약간 망설이며) 네…. 그런데요, 여기 딸과 함께 온 이유는 딸과 며칠 전 크게 싸워서 누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에요. 저는 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요, 용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누가 정말 잘못했는지 신부님에게 들으려고 피정에 참석했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상처를 받았고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심판을 내려주기를 청했다. 자신들이 싸운 이야기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다. 어머니는 지금껏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한 딸이 갑자기 결혼 후 자신을 무시하고 소외시켰기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아 용서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의논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엄마에게 상의했어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사안이란 은행 대출을 받아 딸과 사위가 자신들의 아파트를 구매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에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몰래 아파트를 사들인 것은 어머니를 무시한 처사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대로 딸은 어머니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내며 이해를 못 해주신다며 억울해 했다. 물론 어머니에게 상의를 드리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출가한 딸로서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효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면 어머니 성격상 분명 대출금 이자를 포함하여 여러 걱정을 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어머니를 위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 절대 어머니를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피정 중에 여러 사람 앞에서 나눈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이들은 어머니 편에서 공감했고 어떤 이들은 반대로 딸의 입장을 이해했다. 결국, 오해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결론을 내며 어머니가 좀 더 큰마음으로 딸을 이해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참가자들은 어머니의 큰 결심에 박수를 보냈고, 딸도 그나마 어머니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드린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는 듯 보였다.

어머니와 딸이 나눈 대화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흔히 ‘이면교류’라고 말한다. 이면교류란 겉으로 말한 내용과 속에 숨어있는 뜻이 다른 대화를 말한다. 대인관계에서 이면교류를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면 대부분 소통이 어렵고 갈등을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두 모녀의 대화가 이면교류라 전제하고 그 갈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추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즉 어머니는 자신을 무시하고 중요한 결정, 즉 아파트를 구매한 딸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딸은 일부러 구매 사실을 어머니에게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배려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모녀의 대화 속에 만일 어떤 뜻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