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8. 사랑과 용서

(가톨릭평화신문)


이곳 프랑스 생드니의 무지개 동네 오베흐빌리는 오늘도 세상의 풍요로움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이 지역의 거리를 걷노라면, 내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수도원이 있는 마르세유에서 지하철로만 족히 1시간 반. 역에서 내려 환자들이 있는 병원까지는 걸어서 약 10분이 걸린다. 거리 풍경은 이렇다. 왼쪽은 아랍인들의 상점과 식당이 즐비하다. 반대편 오른쪽은 싸구려 옷가게와 아랍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시끌벅적하지만, 정겹기 그지없다.

우리네 오랜 장터까지 떠올리는 정감을 주는 이곳을 지나면서 자주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작은 식당 앞 좁은 공간에서 검은 히잡으로 얼굴과 머리를 꽁꽁 둘러 싸매고 있는 사람. 통통한 외모에 너그러운 인상을 한 중년 여인이 열심히 음식을 만든다. 그들의 전통 음식인데, 우리 부침개 같은 것이다. 이 음식은 인기도 좋다. 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어선지 많은 아랍인이 이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전’을 사 들고 간다.

복스럽게 보이는 아주머니의 손에 노련하게 부쳐진 전이 먹음직스럽다. 바삐 전을 부치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데도 그녀는 나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저 작은 조각이라도 먹어 보고 싶다’는 엉뚱한 소망도 잠깐이나마 즐겁게 가져본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거리를 걸어 다닌 지도 15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들을 ‘나의 이웃들’이라 표현하고 싶다. 가난이 안겨주는 단순함과 친근감은 나로 하여금 이들을 전혀 이방인이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느끼게 해준다.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라마단 기간이다. 한 달 동안 엄숙하게 보내는 이때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사순 시기와도 닮아 금식, 금욕, 기도의 시기로 삼는다. 올해는 4월 23일부터 딱 한 달 동안 라마단 기간이었다. 이들의 삶 중에 라마단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열심한 무슬림 환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아침과 저녁 단식은 기본.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해 뜨기 전까지는 단식이 풀린다고 한다. 해가 진 후에는 수많은 무슬림이 이 거리 상점 앞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나눈다. 특히 여러 가지 전통 과자들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단다. 내가 봐도 알록달록 사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정말 다양하다. 이 음식과 과자는 각 가정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

무엇보다 라마단 동안 중요한 것은 ‘용서’와 ‘자선’이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선지 이 시기에는 거리와 지하철 안팎에서 동냥하는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

단식이 끝나는 날에는 양을 잡아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왜 양고기를 먹느냐?’고 굳이 묻진 않았지만, 그들의 조상이 유목민이었기에 이런 전통이 이어지리라 여긴다. 무슬림들은 자신이 하는 노동에 열심히 임하며 산다. 병원 청소부부터 요리사, 건축업자에 이르기까지. 무슬림들은 자기 일만큼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며 산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아, 이슬람교의 핵심도 사랑과 용서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조금은 알게 됐다.

어느 땐가 무슬림 환자들과 병원에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다 이런 성경 구절을 전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속 머무시도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