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바오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케미’

(가톨릭평화신문)
▲ 시칠리아 몬레알레 대성당의 12세기 벽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만나 포옹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인류 역사에 이상한 일이 많습니다만,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 변방 갈릴래아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이 로마 제국을 삼켜버린 사건 말입니다.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이루어진 이상한 일이라고! 맞습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우연이고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필연이고 예비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섭리라고 부릅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 두 분이 ‘이상한 일’의 주인공입니다.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 이곳의 성 베드로 광장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성령의 칼을 든 바오로가 우뚝 서서 순례자들을 맞이합니다. 바티칸 곳곳에 두 분의 성화가 그려져 있고 성상이 놓여 있습니다. 교황 집무실에도, 교황 전용 경당에도, 교황과 사제들이 수시로 이용하는 엘리베이터 앞에도, 교황이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에도.



너무나 달랐던 두 사람

베드로와 바오로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말고는 접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정확히 정반대 지점에 있었지요. 출신 성분이 완전히 다릅니다. 지연 혈연 학연이 전혀 없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래아의 일개 어부였고, 바오로는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기득권층이었습니다. 시쳇말로 베드로는 흙수저 출신이고, 바오로는 금수저 출신입니다.

사도단의 진입 경로도 다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열두 사도의 원년 멤버였지만, 바오로는 예수님 부활 후 특별히 인정된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박힌 돌이고, 바오로는 굴러온 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도 완전히 다릅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혹독하게 박해했습니다. 결정적 차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한 목격 증인입니다. 갈릴래아 들판을 같이 걸었고 가르침을 직접 받았고 때로는 야단도 맞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지요. 반면 바오로는 예수님의 육성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환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세상 기준으로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이입니다. 더구나 팀워크를 이루어 한 가지 일(선교)을 함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조합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두 분은 하셨습니다. 기적 같은 팀워크로 기적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몸통이고, 바오로는 교회의 두뇌였습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몸통으로서 지휘권(수위권)을 행사했고, 바오로는 교회의 두뇌(씽크탱크) 역할을 한 것입니다. 몸통 없이 두뇌가 존재할 수 없고, 두뇌 없이 몸통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상하 관계가 없는 투톱 시스템 같지만, 조직 운용에서는 상하 관계가 있었고, 상하 관계가 있는 투톱 시스템 같지만, 역할 분담에서는 상하 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콤비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케미’입니다. 케미(chemi)는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실제로도 잘 어울리고 호흡이 척척 맞을 때 사용하는 신조어입니다. 두 분의 케미는 하느님밖에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용병술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활동 무대를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겼습니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입니다. 두 분은 로마에서 환상적인 팀워크를 발휘하며 광대무변의 에너지를 창출했습니다. ‘1+1=2’가 아니라 ‘1+1=∞(무한대)’의 효과를 낸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조화와 일치였습니다. 드디어 로마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순교 후 약 250년 만의 일입니다.



천국의 열쇠와 성령의 칼

패권국의 황제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속세의 영웅들은 국가 권력(폭력)으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만, 베드로와 바오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국의 열쇠와 성령의 칼로 대역사를 성취했습니다. 십자가 영성이 로마 제국을 뒤덮었고, 그리스도교가 세계 문명을 주도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가 베드로와 바오로를 통해 드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6월 29일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폭군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서기 64년 6월 로마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교황청은 해마다 사제단과 외교단을 초대한 가운데 순례자들과 함께 기념 미사를 성대히 거행합니다.(올해는 온라인 미사로 대체) 베드로와 바오로가 지켜보는 베드로 광장에서!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