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8. 선한 목자만 따라가면!

(가톨릭평화신문)

프랑스에서 함께 사는 동료 수녀님들은 매년 여름이면 2주 정도 피정 겸 휴가를 떠난다. 원한다면 가족도 방문하는 시기가 이때다. 이때마다 내가 피정 겸 휴가로 머무는 곳은 프랑스 남쪽 시골 마을에 있는 수도원이다. 우리 수도회의 많은 수사님과 수녀님들도 이곳에 머물곤 한다. 자연을 벗 삼은 수도원의 마당에는 넓고 푸른 초원,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내가 이곳에 맨 처음 왔던 때는 1986년 12월, 그러니까 프랑스에 온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때였다. 막 예수님 탄생을 준비하는 성탄 시기였다. 프랑스에서 최고의 명절 또한 성탄절이기에, 이곳 수도원이 있는 시골 사람들도 최고의 축일을 보내고 있었다. 성탄의 기쁨은 도시인들의 그것과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막 당도했던 당시 나의 마음은 자못 쓸쓸했다.

한창 추운 겨울이었던 그때. 이곳 들판에 하얗고도 살포시 내린 눈 속에서 푸른 풀들을 마주했다. 작은 한 순간이었지만, 문득 신비로운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주님께서 새 세상을 보여주시는 것처럼 여겨졌다. 눈을 돌려보니, 영화에서만 보던 양 떼들이 보였다. 회색빛의 작은 몸뚱이가 통통한 데다,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양 한 마리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이상하게 나의 눈길을 확 끌었던 기억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편 22장)라는 말씀이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이어서 요한복음 11장 ‘목자와 양들’의 말씀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성경 말씀이 바로 눈앞의 현실처럼, 그것도 잔잔히 펼쳐지는 광경이 내 안에 작고 놀라운 감동마저 가져다줬다. 수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막 시작한 나에게 일어난 작은 기쁨이자 체험이었다. 내 마음은 환해졌고, 푸르름으로 물드는듯했으며, 쓸쓸함은 금세 가셨다.

나는 계속, 그리고 천천히, 편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들을 바라봤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착한 목자가 준비해놓은 넓은 물통에는 물이 가득했다. 양들이 목이 마르면, 언제라도 즉시 와서 흡족하게 물을 마셨다. 양치는 목자는 그들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양들의 행복감을 피부로 함께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이 모든 광경이 시편 23장의 이야기가 아닌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1-3) 그리고 마지막 6절의 말씀.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해마다 성소자가 많이 줄고 있다. 그러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목자만을 따른다면 이처럼 큰 은혜와 행복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나는 삶으로 깨닫고 있다. 시편의 말씀이 우리를 잘 인도해 주고 있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마주했던 드넓은 초원과 귀여운 양 떼들이 보고 싶을 때면,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편을 노래한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초원의 양이 되고, 희망찬 푸름이 솟아오른다. 눈앞에 원대하게 펼쳐진 대자연을 보며, 내 안에 모든 언어는 사라지고, 평화로운 침묵만이 나를 포옹해준다. 이것이 수도자의 기쁨이다.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