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후에 이글을 보는 자는… ”

(가톨릭평화신문)
▲ 로마 우르바노신학원 원장 빈첸조 비바 몬시뇰과 이백만 주교황청 대사가 조선인 신학생 전아오의 한글 기도문이 쓰여있는 입학서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제공




??후에 이글을 보??? 자???




100년 전 로마에 왔던 신학생 두 분을 만났습니다.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10월 12일,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한국인 최초의 로마 유학생인 전아오(全俄奧) 아오스딩(아우구스티노)과 송경정(宋庚正) 안토니오.

대구대목구(대구대교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의 신학생 2명이 드망즈 주교를 따라 1919년 11월 로마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일제강점기 3ㆍ1운동이 일어났던 바로 그 해입니다. 1920년 1월 20일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6일 뒤 드망즈 주교와 함께 베네딕토 15세 교황을 알현했습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코리아의 훌륭한 사제가 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전아오와 송경정은 안타깝게도 청운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송경정은 병(결핵)이 생겨 학업을 포기한 채 귀국해야 했고, 전아오는 로마 현지에서 심장병으로 선종했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이들의 학교생활은 어떠했는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실상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차원에서 대학 측에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입학추천서, 입학서약서, 사망진단서 등 5건의 서류(PDF 파일)가 도착했습니다.



한글 기도문에는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전아오의 기도문이었습니다. 우르바노대학에 입학하는 신학생들은 일정한 양식의 입학서약서를 라틴어로 써서 제출해야 했답니다. 예비 사제로서 학교 규율을 잘 지키며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전아오만은 달랐습니다. 라틴어 서약서를 쓴 다음 한글 기도문을 써놓은 것입니다. 깊은 신앙심과 학구열이 담겨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천주 예수님, 이 불쌍한 죄인 전 아오스딩 조선에서 처음으로 와서 공부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사 무사히 공부를 잘하여 조선을 로마와 같이 하여 주시고 영원한 당신 영광에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 차후에 이 글을 보는 자는 이 죄인을 생각하여 성모경 한번 염하여 주심을 희망.”

전아오는 대체 왜 이 기도문을 써놓았을까. 한국인 말고는 읽지도 해독하기도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집트 상형 문자나 중국의 한문으로 보였을 텐데…. 결과적으로 제가 이 기도문을 제일 먼저 읽고, 제일 먼저 해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차후에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성모송을 한 번 바쳐달라’는 마지막 소절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전아오의 기도문을 PDF 파일이 아닌, 실물(진본)로 봐야 했습니다. 자료 열람을 위해 우르바노대학을 방문했습니다. 우르바노신학원 원장 빈첸조 비바 몬시뇰을 만나러 가던 날, 웬일인지 보슬비가 온종일 내렸습니다. 전아오의 영혼이 빗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비바 몬시뇰은 접견실에 자료를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학 자료실에서 100년 동안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묵혀있던 전아오의 기도문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대사관 일행이 기도문을 보면서 놀라워하자, 비바 몬시뇰이 무슨 내용이냐며 해석을 부탁하더군요.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비바 몬시뇰은 우리 일행보다 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연신 성호경을 그으시더군요.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전아오가 하늘에서 우리 일행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의 청년이지만 일본인으로


전아오와 송경정은 망국의 한을 품고 로마에 왔습니다. 성유스티노 신학교 재학생들은 3ㆍ1운동 직후 대구에서 독립운동 시위를 했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전아오와 송경정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겠지요. 그들은 일본 여권을 들고 로마에 왔고, 일본 대사관에 여권 등록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조선의 청년이었지만, 법적 신분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이 슬픔과 고통을 누가 알아주었겠습니까. 성모님 말고는!

현재 로마에서 신학 공부(석박사 과정)를 하는 한국의 신부와 수녀는 180여 명, 로마를 포함하여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는 신부와 수녀와 수사는 100여 명에 달합니다. 한국 가톨릭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입니다. 전아오는 이탈리아에 있는 한국 성소자들의 수호자로 로마를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 외곽 캄포 베라노 공동묘지의 인류복음화성 구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