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속으로 커피나무 심으세요

(가톨릭평화신문)
 
 

 

 


콜롬비아 커피를 마실 때면 지은 죄를 살펴보려 애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콜롬비아 커피가 속삭인다. 그 소리는 묘하게도 가슴으로 들린다. 대부분 무엇인가를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이다. 고해성사를 마치고 신부님에게서 보속(Penances)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커피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해 마시는 것은 되레 스트레스를 부를 일이지만, 콜롬비아 커피를 대할 땐 그렇게 할 만하다. 콜롬비아 커피는 태생적으로 참회와 회개를 의미한다. 그 사연은 17세기 콜롬비아 산탄데르 주의 작은 마을에서 비롯됐다. 예수회 소속인 프란치스코 로메로 신부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 고행을 실천하겠다는 신념을 지니고 대서양을 건너 오지를 찾았다. 원주민들은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에 먹을 것이 많다지만 장마나 가뭄이 이어질 때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로메로 신부는 주민들이 대를 이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커피는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금보다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로메로 신부는 어렵사리 커피 묘목을 구해 직접 재배하며 주민들에게 따라 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주민들로선 커피 열매가 매력적일 수 없었다. 주렁주렁 열리는 빨간 열매가 체리처럼 탐스러웠지만, 과육 없이 두 개의 씨앗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커피는 염소가 먼저 먹기 시작해서 밤새 울어 대는 것을 보고 인간이 잠을 쫓기 위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커피나무는 3~4년이 지나야 열매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한 작물이다. 커피 농사가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자, 로메로 신부는 고해성사를 받으러 오는 주민마다 보속으로 커피나무를 3~4그루씩 심게 했다. 고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커피나무를 들고 밭으로 가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산탄테르 커피밭은 가톨릭 신앙심을 상징하는 지표가 됐다. 콜롬비아 대주교는 이 소식을 접하고 무릎을 치면서 커피나무를 재배토록 하는 보속을 전 교구에 권장했다. 예수회의 이런 방침이 운동처럼 번져 1850년까지 쿤디나마르카, 안티오키아, 칼다스 등 곳곳이 커피밭으로 바뀌었다. 이런 연유로 콜롬비아는 현재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커피 대국으로 성장했다. 세계인이 즐기는 커피 10잔 중 한 잔이 참회와 회개의 뜻을 담은 콜롬비아 커피인 셈이다.

한 잔의 콜롬비아 커피를 마주하고 고해성사의 의미를 되새긴다. 죄를 지었지만 보속을 수행함으로써 사함을 받는 것은 성체성사를 받은 신자만 누릴 수 있는 은총이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거듭 죄의 사함을 받는 것이 되레 점점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교회 밖의 시선도 있다. 그것은 보속이 깊은 통회를 거쳐 고백한 이에게 비로소 주어지는 것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속은 단지 죄에 대해 벌을 치름으로써 용서를 받는 장치나 절차에 그치는 게 아니다. 고해성사는 신자라도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남아 있다는 사정을 잘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 자선, 금식, 기도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보속은 반복되는 가운데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게 아니라 나약한 영혼을 단련시키는 약이 되는 것이다. 로메로 신부가 보속으로 내린 ‘커피나무 심기의 정신’은 4세기가 지나도록 콜롬비아 커피에 남아 우리의 영혼을 참회와 회개로 이끄는 경종이 되어 주고 있다.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