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으로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집중하라”

(가톨릭평화신문)
▲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에게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을 강조해 가르쳤다. 이는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가르침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과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림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예언적 꿈 장면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조토 작,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프란치스코는 우리 수도회 내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된 안토니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나 회가 아니라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임을 강조한다. 이 편지에서 프란치스코가 안토니오에게 말한 이 거룩한 기도의 영과 거룩한 신심의 영은 온전히 하느님께 우리의 온 힘과 마음, 정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갖가지 생각으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늘 우리가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죄나 어둠이나 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가는 계명, 즉 신명기의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1; 10,12; 11,13; 13,4; 26,16; 30,2; 30,6 ; 30,10)는 계명이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선하고 긍정적인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내면을 이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영’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시다. 여기에는 오직 선과 용서, 치유와 화해, 구원과 완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라라 성녀는 프라하의 아녜스 성녀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한다.

“오, 여왕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시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그 안에서 당신 얼굴을 살펴보십시오. 그리하여 갖가지 장식으로 휘감고 차려입어(시편 44,10 참조) 안팎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의 딸이요 사랑스러운 정배에게 어울리는 온갖 덕행의 꽃과 옷으로도 치장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대가 거울 전체에서 관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거울 안에는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찬란히 빛납니다. 나는 말합니다. 이 거울의 첫 부분을 보면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루카 2,12 참조) 그분의 가난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시오. 오, 감탄하올 겸손이여, 오, 놀라운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마태 11,25 참조) 구유에 누여져 있습니다. 그다음, 거울의 가운데를 보시고 겸손과 적어도 복된 가난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하여 그분이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생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 거울의 맨 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그분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거울 친히 십자 나무에 달리셔서 행인들에게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십시오. 내가 겪는 이 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 그러므로 ‘이것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 영혼은 내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리이다’(애가 3,20) 하시며 외치시고 울고 계신 그분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응답합시다. 그리하여, 오, 천상 임금의 왕후시여, 그대 안에 이 사랑의 불이 날로 더 활활 타오르면 합니다!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5-27).

여기서 1998년도 성탄을 앞두고 필자의 고해 사제셨던 저베이스 화이트 신부님(Fr. Gervase White, OFM)께서 보내 주신 성탄 메시지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 신부님은 필자의 유학 생활 중에 머물던 뉴욕주의 성 보나벤투라 수도원에 사시면서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셨다. 이 신부님은 2002년도에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지만, 필자에게는 프란치스칸 삶의 진수를 행복하게 전해준 아름다운 형제 중 한 분이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나는 우리가 대단히 유복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단 몇 사람만이 참으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팩스와 휴대폰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전자 메일로 접속되어 있어 잠겨 있는 문 뒤의 도시들에서는 안전이 보장되어있는 듯하지만,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 이상은 없다 싶을 정도의 공포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가 텔레비전 쇼와 영화, 뉴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토록 나쁜 것들로 인해 우리의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는 데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술이 더 빠르고 더 먼 곳에까지 다다를 수 있게 해줄수록, 느긋해져야 할 우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의 우리 사명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유비무환식의 계획성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든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기대치 않은 일들이 발생할지라도 우리는 곧바로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