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6. 가르멜회 수녀님

(가톨릭평화신문)


우리 수녀들은 이곳 베르사유의 수도원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양로원에서 사도직 활동을 해오고 있다. 프랑스 교구에 속해 있는 양로원에는 가르멜회 소속 어르신 수녀님 세 분이 살고 계셨다.

그런데 이 중 한 분께서 며칠 전 하늘나라 주님 곁으로 가셨다.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이시다.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 수녀님들과 나는 가르멜수도원과 가까운 성당에서 봉헌된 수녀님의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넓은 성당 안에는 가르멜회 수녀님들과 관계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제대 옆 하얀 벽을 올려다보니, 그곳엔 환한 천사의 미소를 닮은 마리 수녀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평소 뵙던 모습처럼 수녀님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사진 옆에 한 줄 글이 눈에 들어왔다.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있는, 사랑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셨다.’ 이 단순하면서도 희망찬 한 말씀이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이 문구대로 수녀님은 하느님 사랑 속에 사셨다.

수녀님은 75세 때 우리 양로원에 오셔서 83세에 천국으로 떠나셨으니 8년 동안 우리 수녀님들과 행복하게 사셨다. 가끔 내가 수녀님을 방문하면 마음을 다해 환대해 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로 소박하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수녀님의 작은 방은 함박웃음으로 가득 찼다. 소박한 수녀들의 만남에 하느님께서도 늘 함께하셨으리라.

어느 날 마리 수녀님은 자신의 성소 이야기를 해주셨다. 가르멜회에 처음 입회했을 때의 나이는 50세! 수녀님께서 늦은 나이에 입회하신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섯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가신 게 큰 이유였다. 수녀님은 맏딸이었으며, 홀로 자식들을 키우게 된 어머니를 돕기 위해 50세까지 30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마리 수녀님은 웬만한 운동선수들은 저리 가라 할 만큼 키도 크고, 몸집도 우람하시다. 수녀님 마음도 체격 못지않게 넓다. 그 바다 같은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챙기신 것이다. 수녀님은 형제자매들이 다 자라 독립할 때까지 수도자가 되는 자신의 뜻을 미루고서 일하셨다. 그렇게 맏딸로서 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수녀님은 그 엄격한 가르멜 수도회 수도자가 되셨다. 그리고 평생 하느님께 충실하게 사셨다.

이날 장례 미사를 주례하신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강론하셨다. 실제로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은 가르멜회 수도자로서 십자가 옆에 꿋꿋하게 서 계신 삶을 살았고, 그런 모습이 내 머리에 그려졌다.

수녀님은 가르멜회의 그 두툼한 문을 두드리기 전, 홀로 된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자였다. 어머니를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준 훌륭한 따님이었으며, 네 형제자매의 착하고도 든든한 누님이셨고, 언니로서 사셨다. 수도자가 되기 전에도 하느님 뜻에 따라 어머니를 위했고, 가정에서 그 소임을 다한 뒤엔 수도자로서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신 삶을 산 것이다. 그 용기와 힘의 원천은 바로 수녀님께서 십자가 옆에 꿋꿋하게 서 계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4)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