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7. 아름답고도 착한 동방교인 의사

(가톨릭평화신문)


올해 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프랑스에 도달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나는 환자들을 매주 규칙적으로 방문했다. 한 병실에서 본 환자는 피부가 갈색이었고, 담요 밖으로 내놓은 두 다리는 앙상하게 피부에 뼈만 붙어있었다.

내가 병실로 들어갈 때부터 바싹 마른 얼굴에서도 반가운 표정을 계속 지으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마디 말조차 꺼내기 매우 힘들어할 만큼 중환자였다. “저의 조국은 ‘아이티’입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중미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이며, 가톨릭 국가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는 이 환자와는 더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환자 곁에 몇 분간 있다가 복도로 나오니, 마침 의사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첫인상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긴장감도 사라졌다. 망설이지 않고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의사 말로는 암환자는 아니지만, 당뇨병이 매우 심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당뇨 환자들을 자주 봐왔다. 심하면 발과 두 다리도 절단해야만 하는 무서운 질환임을 환자들을 보면서 알게 된 터였다. 의사와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저는 한국인 수녀예요.” “저는 알바니아인입니다.”

순간, 우리 베르사유 수녀원에서 함께 살았던 알바니아인 수녀님이 금방 떠올랐다. 내가 “가톨릭 신자세요?”라고 물으니, 여의사는 “동방교회 신자”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와의 대화에 거리감을 두지 않으려는 듯 “가톨릭과 동방교회는 많이 닮았지요”라고 호의를 보였다. 나 또한 마음을 스르르 열어, “두 종교는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예수님 사랑 안에 우리는 친구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됐다.

나는 마음과 얼굴이 고운 동방교인 의사에게 사제를 오시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티 중환자에게 사제 강복과 병자성사를 주길 바란다고 하니, 그녀도 즉시 병자성사를 알아들으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내 생각에 기꺼이 동의하는 그녀의 얼굴은 환하고 예뻐 보였다.

그런데 내겐 휴대폰이 없었다. 다시 “당신 휴대전화로 병원 근처 주임 신부님께 전화해도 괜찮을까요?”, “오, 좋아요!” 수화기 너머 신부님께서는 이른 시일 안에 병원에 오셔서 성사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순간 환자를 향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우리를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종교의 벽을 넘어 마음을 다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아름다운 알바니아인 의사와의 만남이 내게도 위로와 격려를 안겨줬다.

여의사에게 마음이 열려 대화를 좀더 이어갔다. 나는 작은 가방 안에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설명한 ‘병자성사’에 관한 내용을 작은 크기로 복사해 항상 여러 장 갖고 다녔다.

나는 착한 의사에게 “당신은 환자들을 매일 보니, 아픈 가톨릭 신자 환자와 가족에게 이 설명서를 줄 수 있나요?” 하고 조심스럽게 청했다. 이 동방교인 의사는 즉시 종이를 건네받으면서 자신이 복사해서 환자들에게 주겠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이 병원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가끔 병실이나 복도에서 의사들을 우연히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의사는 나의 질문과 요청에 거리낌 없이 기꺼이 응해줬다. 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는 의사를 존경하여라. 주님께서 그를 창조하셨다.”(집회서 38,1) 주님! 이 착한 알바니아인 의사를 축복해주세요.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