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용두사미(龍頭蛇尾)

(가톨릭평화신문)
▲ 김호균 신부



주교님과의 흥정 아닌 흥정으로 교구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노동사목부라는 부서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노동사목이라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해야 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교회문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0여 년 전 신학생 때 읽었던 것을 다시 읽으려니 생소하기는 했습니다. 노동에 관한 문헌들 「노동헌장」부터 「백주년」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관련된 문헌들을 읽어 냈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노동법(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및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근로복지기준법도 읽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양대 노총 자료와 회칙까지 두루 섭렵하였습니다.

그렇게 다 읽었는데, 진짜 열심히 읽었는데 결과는 남는 게 없었습니다. 순전히 읽기만 하고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탓’으로 변명을 해보기도 하고, ‘사회법이라는 생소한 분야라서’라는 핑계로 스스로 정당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읽는 능력은 있으나 기억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지금의 저의 처지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누가 나에게 노동문제에 대해서 상담한다면 어떻게 하지?’

‘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데 과욕을 부린 건 아닌지?’

‘무능한데 질투심만 있는 건 아닌지?’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능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욕을 부린다는 것은 못해낸다는 말입니다. 질투심이 있다는 것은 분열만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정직한 진단은 빠른 치료를 할 수 있고, 빠른 치료는 건강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정직한 고백을 통해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치를 낮출 수 있게 만들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기도 될 것입니다.

진존숙(陳尊宿)이라는 스님이 제게 한마디 던집니다.

“그대가 그렇게 삼갈사갈(三喝四喝)을 한 후에는 무엇으로 마무리를 질 것인가?”



김호균 신부(대구대교구 노동사목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