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8. 기쁨과 평화 가득한 하느님 나라

(가톨릭평화신문)


수도원 창문 밖을 바라본다. 적어도 40년 이상은 돼 보이는 뿌리 깊은 나무가 수도원 앞을 늘 지키고 서 있다. 그 나무도 계절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가보다. 붉은색,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더니 그 옷들도 이내 바닥에 내려앉고 있음을 매일 보게 된다.

수도원 옆에 자리한 요양원의 어르신들도 어찌 보면 나무를 닮았다. 요즘엔 어르신들께서 거의 매일 한두 분씩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떠나신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했던가. 하늘나라로 향하는 채비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 아닐까.

그간 오베흐빌리에 지역의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왔다. 내가 펴낸 「그대들을 사랑합니다」에도 썼지만, 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가를 불어로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성가 역시 기도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깊은 침묵 속에서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는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 옆으로 다가가 성가를 내 마음 다하여 천천히 부드럽게 불러주기도 했다. 암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았던 병고의 삶이 물러가고 있는 순간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한마디 말씀이 길지 않은 40여 년의 인생을 살았던 그 여인의 뼛속 깊이 새겨졌으리라. 며칠 후 젊은 여인은 더는 고통도, 눈물도 없는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떠났다.

강릉 교외에 사는 동생 부부가 떠오른다. 동생 내외는 강릉 선자령 고개가 훤히 보일 만큼 경치가 수려한 곳에 아틀리에를 만들어 지내왔다.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그것을 기념품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강릉을 대표하는 인물인 신사임당의 그림인 ‘초충도’를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해 생활용품으로 제작해왔다. 그들은 섬세하고도 놀라운 재능으로 산과 바다, 호수로 이뤄진 아름다운 강릉을 예술적으로 더욱 빛나게 하는 데에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했다.

제부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병환의 고통을 이겨내온 터였다. 얼마 후 여느 때처럼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부가 위독해 병자성사까지 받았다는 메일을 보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하상 바오로(제부의 세례명)가 임종을 맞이하고 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느님 안에 안길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메일로 전해진 제부의 글에는 선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지상에서 겪은 몸과 마음의 상처들, 사랑 가득하신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안아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고 느끼면서 하느님 만나러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메일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부는 지상에서의 아픔을 뒤로하고 편안하게 하느님 나라에 갔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제부는 그분을 사랑하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그 신앙의 마음을 글과 작품을 통해서도 잘 보여줬다. 대화할 때마다 그가 신앙인으로서 예수님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느껴왔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제부는 지금 기쁨과 평화 가득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축복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성소의 완성이다.

제부, 어느 날 우리 모두 주님 얼굴 앞에서 두둥실 흰 구름 타고 다니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요!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