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의 마지막 소원

(가톨릭평화신문)
▲ 예루살렘 서쪽에서 바라본 성벽. 가까이 보이는 탑은 다윗 탑, 멀리 보이는 종탑이 성모영면성당이다.



“어젯밤에는 좀 좋아지는 것 같더니, 일어나질 못하네요. 미안하지만 하루 더 호텔에서 쉬어야겠어요. 꼭 이스라엘을 순례하고 싶다던 친군데….”

쓴웃음을 지으며 친구를 쳐다보는 형제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두 분은 이틀 내내 호텔에서만 지내셨습니다. 단순한 감기나 시차의 문제가 아닌 듯했으나 더 묻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다음 날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모두 캐리어를 버스에 실었는데, 이제 보니 요셉 형제님의 짐은 조그마한 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안부를 물으니, 어제보다 더 수척해진 얼굴로 그저 견딜만하다고 짧게 답하셨습니다. 버스에서 좀 누워 있으면 좋겠다며 맨 뒤에 앉으시고는, 약에 취하신 듯 계속 누워계셨고 점심 식사도 거의 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순례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요셉 형제님의 병세에 다들 의구심이 커지고 있었고, 저 역시 선배 가이드와 요셉 형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친구분이 상의할 일이 있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가만히 누워계신 형제님을 뒤로하고, 친구분은 당신이 실은 요셉씨의 친구가 아닌 주치의이며, 심지어 가톨릭 신자도 아니라고 털어놓으시고는 진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요셉 형제님은 열 살 때쯤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사고로 일찍 하느님 품으로 가셨고 형제님은 천애고아가 되셨습니다. 술과 마약, 도박에 빠져 살다가 결국 폭력 조직에 몸을 담게 되고, 수십 년간 어두운 뒷골목에서 살아가던 형제님은 결혼했으나 아이도 없이 금방 이혼하셨고 이후 50세가 될 때까지 홀로 사셨다고 합니다. 몇 번의 수감생활을 반복하며 어느덧 중년이 되자 형제님은 자신의 인생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어느 날, 삶에 대한 회한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정처 없이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프란치스코 수도원 앞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그 종소리는 어린 시절 매일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하시던 조용한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형제님은 그 순간 수도원의 벨을 눌렀고, 수도원장님을 만나 “살려달라”고 하셨답니다.

수십 년 만에 고해성사를 드린 후, 수도원장님은 수도원에서 종을 치며 청소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형제님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10년이 요셉 형제님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암은 형제님의 평온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암세포는 온몸에 퍼져있었고 치료는 불가능했습니다. 요셉 형제님의 마지막 소원은 주님의 땅을 순례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반대했으나, 원장님은 요셉 형제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셨고, 주치의가 보호자로서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셨습니다. 그렇게 형제님은 순례를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순례는 너무도 빨리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더는 진통제로 버티실 수 없으며 당장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치의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행히 새벽 1시에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두 분을 텔아비브 공항에 모셔다드렸습니다. 요셉 형제님은 택시에 타시기 전에 한참이나 갈릴래아 호수를 쳐다보셨고, 이후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는 단 한 번 눈길을 주셨을 뿐 다시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숙소에 돌아와 해가 뜰 때까지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두 분의 이야기를 순례단에 전하자 모두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했습니다.

다시 하루의 순례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뒤 얼마 후, 수도원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요셉 형제님이 조금 전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두 분 가이드님께 고맙다고 전해달랍니다. 갈릴래아에 오면서 버스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정말 감사하다고…. 또 순례를 마치지는 못했지만, 순례단 모두에게도 감사를 전한답니다. 요셉씨는 예루살렘 성벽을 본 것만으로, 그곳의 공기를 호흡한 것으로 충분히 순례를 다 이루었다고 말했어요. 갈릴래아 호수를 본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었다고도 했어요. 자신은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꼭 전해달라고 했어요.”

첫 가이드를 맡아 횡설수설했을 게 뻔한데 생애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벽과 버스 밖 풍경을 본 것이 전부였지만, 순례를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례 내내, 그리고 20년이 훌쩍 넘은 오늘까지도 그분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저와 함께하는 이 순례가 누군가에겐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례일 수 있고, 또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요?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 주님이 허락하신 지금 이 순간이 내일 틀림없이 나에게 되돌아오리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그 누구도 없으니까요. 그 하루, 그 순례는 꼭 완벽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만큼이 내게는 충분한 것임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한 번 요셉 형제님을 기억합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