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향기 with CaFF] (39) 이타미 준의 바다

(가톨릭평화신문)
▲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포스터.



요즘 자주 접하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검색해 봤다.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다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다인을 이르던 말이라 한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주인공도 유동룡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건축가로 살다가 2011년 6월에 다시 한국에 묻힌 한국인 디아스포라이다. 그가 남긴 건축물들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곳곳에도 남아 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그가 남긴 건축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정다운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주도의 물과 바람과 돌을 상징하는 수풍석(水風石) 미술관에서 그의 건축을 처음 접했고 사람을 위로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 감독은 그러나 “그분이 재일교포 2세로 살아온 시간, 고독과 싸우면서도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용기를 내가 감히 담을 수 있을까 싶었다”며 영화를 만들기 전 무거웠던 심정을 밝혔다. 그리고 정다운 감독은 8여 년의 시간 동안 그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내보낸다.

영화를 보고 느낀 건, 그의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그 지역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축 안에 머무르는 사람에게 자연의 본질적인 가치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된 건, 그가 남긴 건축물들의 가치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쓴 정다운 감독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타미 준의 가족, 동료, 후배, 건축을 의뢰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듣고서야, 그의 이런 건축물들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타미 준은 “건축에서 사람의 따스함과 생명이 작품의 근저에 자리 잡지 않는 이상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 그가 딸의 결혼식에서 덕담 한마디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영상이 나오는데, 그는 싱긋 웃으며 “사랑해”라는 외마디를 남긴다. 이 군더더기 없는 말에 온기 같은 것을 담을 줄 아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걸까.

영화를 보면 중간중간 개량 한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숲을 헤매기도 하고 이타미 준의 건축물 안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또 그가 동양인 최초로 전시했다는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앞을 거닐기도 한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감독의 자녀로 8년간 영화를 찍으며 성장한 것이라 한다. 뛰어놀며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이타미 준이 중시했던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극장을 나서는데 ‘주님의 작은 그릇’이라는 성가가 떠오른다. ‘내 마음은 주님이 지어내신 작은 그릇, 연약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소서.’ 이타미 준이 생애를 바쳐 만든 건축물들, 그리고 8년간 영화에 담은 정다운 감독. 훌륭한 예술품은 그것을 지어낸 예술가를 닮는다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나를 지으신 분을 닮아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 조종덕(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