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기에 느끼는 공허함, 기도하며 사랑으로 채워야

(가톨릭평화신문)
▲ 3년 동안 쓴 70편의 시를 묶은 시집을 펴낸 신달자 시인.



“제가 쓴 시는 거대한 게 아닙니다. 사소하고 작아요. 일상생활의 아득함과 짜릿함, 심란함, 적막함, 불안함 같은 것들을 썼어요. 시 공부할 때 사랑과 외로움, 그리움 같은 단어는 ‘낡은 단어’라고 가르치는데,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흔할수록 소중한 것들이에요. 흔히 쓰는 낱말들을 버려서는 안 되겠구나 느꼈죠.”

올해 나이 76세.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이 3년 동안 쓴 70편의 시를 한데 묶어 「간절함」(민음사)이라는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에는 사람과 자연, 시와 신, 너와 나를 향한 간절한 시선이 배어 있다. 시인은 잎새에 매달려 들어가지도 못하고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물방울을 외로움이라 쓴다.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는 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매는 밤, 후려치는 빗줄기도 싸하게 입안을 맴도는 동치미 한 사발을 무심함으로 그렸다.

그의 선명한 시어는 인간의 감정을 향유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이 젊은 시절에는 필요했지만, 자꾸 껴입는 옷 같아요. 어리석은 소모죠. 이제는 진심이 좋아요. 감정은 거품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보고, 사랑할 시기죠.”

시인은 최근 몇 달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고, 병상에 누워 시집 제목을 정했다. 감사함이 절실해졌다. “나는 손가락이 왜 이렇게 생겼어? 나는 왜 이렇게 게을러? 나 자신에게 불평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프면서 ‘못생기면 어때? 건강하면 되지’로 바뀌었어요.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뜬 거죠.”

올해 세례받은 지 40년 된 시인은 상실과 질병, 정서적 허기에서 나온 새로운 감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에의 의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시를 쓰며 묵주기도 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기도하며 인간적인 공허함을 영성으로 채운다”고 털어놨다.

이번 시집에는 좌판 나물 파는 할머니에게 악수를 청하면서도 자신의 무너진 뼈 소리에는 무심했던 추기경님을 그린 ‘김수환 추기경’과 2000년 전 ‘네’ 라는 짧은 대답 하나로 거친 광야를 다 안아들인 ‘성모 마리아’ 등 영성을 길어올린 신앙시도 담겼다. 시인은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면서 “세례를 안 받았더라면 괴롭다고 떠들고 다녔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인으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서점에 책을 사러 갔는데 계산대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시집을 샀을 때”라며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견뎌야겠다, 내가 우울하니까 하느님이 보여주신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위로를 받으면 위로의 힘을 주고 싶다”면서 “결국 우리의 등을 떠밀어 주는 건 독자”라고 덧붙였다.

그는 팔순이 되는 2022년에 마지막 에세이 묵상집을 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순간이 적히겠죠. 누가 봐도 위로가 되는, 고개를 끄덕이는, 내 글 같은 묵상집을 내고 싶어요.”

신 시인은 시집 마지막에 실은 산문 ‘나를 바라보는 힘’에서 이같이 고백했다. “슬픔도 늙는다. 때론 젊은 날처럼 옷이 젖도록 울고 싶은 때도 있지만 그렇게 울지 않는다. 마음이 흐느끼고 어깨가 출렁이는데 눈은 마를 때가 많다. 그래서 강물을 바라본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본다.(중략) 바라봄이 울음을 가능케 함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물었다. 지갑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보여줬다. “추위와 냉기여, 주님을 찬미하여라.”(다니 3,69)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